해가 갈수록 3·1절의 민족사적 의미가 국민의 뇌리에서 퇴색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특히 나라 잃은 통사를 체험한 적이 없는 전후세대에게 3·1절은 한낱 「기념일의 하나」이상의 감흥을 주지 못하는 것같다.하지만 일제의 침략과 압제에 거족적으로 항거하고, 민족자결의지를 만방에 천명한 3·1운동의 숭고한 정신이야말로 영원히 계승발전시켜야 할 값진 유산인 것이다. 3·1민족혁명은 외침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낼 힘이 없는 약소민족은 별 수없이 강대국의 먹이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원리를 뒤늦게 통감하고 봉기한 민족자각운동이었다.
일제의 강점은 먼저 개항하고 근대적으로 무장한 일본이 약한 이웃을 제물로 삼은 약육강식의 표본이었다. 일부 우리 국민들은 지금도 일본인들을 천적처럼 싫어한다. 일본의 전전세대 역시 통치시대의 우월감을 버리지 못하고 한국을 내려다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두나라가 국제화 시대에도 「가깝고도 먼 나라」의 간격을 좁히지 못하는 것은 그런 역사의 앙금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고 돈다. 우리 국민의 대일감정도 세대에 따라 현격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고 긍정적인 시각으로 사물을 보려는 「한글세대」들은 역사접근방식부터 전전세대와는 판이하다. 두나라의 과거문제도 가해자대 피해자의 관계로 보기보다는 당시 우리 통치세력의 무능과 무방비, 분열과 부패가 외침을 자초한 것으로 분석하는 경향이 짙다. 냉정하고도 객관적인 이러한 역사인식은 전전세대의 감정적이고도 국수주의적 역사의식과는 다르다.
사실 우리 선대가 좀더 일찌감치 주변정세에 눈을 뜨고 당파싸움 대신 부국강병에 힘썼더라면 치욕은 없었을 것이다. 율곡의 10만양병론에 귀기울였다면 임진왜란은 겪지 않아도 됐을 것이고, 구한말의 분열·혼란이 없었던들 일제침략을 받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역사의 가설은 가설로 끝나지 않고, 역사는 되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혹자는 오늘의 한반도 주변정세가 구한말을 닮았다고 우려한다. 미·러·중·일 4강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동북아의 역학구도가 그렇고 여기에 북한이라는 위험인자가 하나더 추가됐다는 것이다.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일수록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부국강병과 부국안민의 지속적인 추진이다. 몸이 허약하면 병균이 침투하고 나라가 허약하면 외침을 불러들인다는 평범한 진리에 근거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경제가 견실해야 한다. 치열한 국제경쟁시대에서 살아남고, 그동안 쌓아올린 성장의 탑이 붕괴되는 비극을 막기 위해서라도 정부와 기업은 물론 온국민이 경제살리기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 고비용, 저효율의 낡은 구조를 깨고 경제의 틀을 새롭게 짜야한다.
21세기는 국가경영관리의 시대이다. 국가가 보유한 인·물적, 유·무형의 자원을 체계적 과학적으로 관리하고 활용해 최대효율로 국가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정치논리를 앞세운 정쟁이 아닌 경제마인드에 바탕한 경영관리기법을 통해 국민을 풍요롭고도 편안히 살게하는 지상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우리 내부의 고질병인 지역갈등구조와 지역감정의 장벽도 완전히 허물어야 한다. 우리사회의 중심은 전전세대에서 전후세대로 옮겨가고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말처럼 매사를 보다 밝은 눈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차세대의 젊은 주역들이 나라의 견인차가 될 때 우리에게 밝은 미래가 보장된다는 것이 3·1절을 맞는 나의 소회다.<신한국당고문>신한국당고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