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김밥장사 등을 해서 모은 돈 몇억 혹은 그 이상의 전재산을 일거에 장학금으로 내놓는 이들이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하기 힘든 선행이며 그 갸륵함에 머리 숙여지지만 그런 보도를 접할 때마다 한편으로는 안되어 보이기도 한다. 그 큰 돈을 모으기 위해 얼마나 고생 했을까.장학금으로 다 내놓기 전에 자신이 여생을 유유하게 살 돈은 떼어놓았을까. 어쩐지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안쓰러운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평생 근근이 모은 돈을 받는 당사자도 다소 염치가 없지않을까 싶다.
그런데 또다시 생각해보면 그래도 김밥 장수 할머니 등 거액을 내놓는 사람들은 선행을 했으니 행복한 사람이다. 이런 일이 자신이 배우지 못한데 대한 시원한 한풀이일 수도 있고, 종교적인 믿음에 의한 행위일 수도 있다. 동기야 어떻든 선행한 당사자들의 만족감은 다른 사람이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보기에 안쓰럽다 못해 숨이 막히고 가슴이 아프기까지 한 사람들은 정작 따로 있다. 자식에게 돈더미를 안기면 자식사랑인 줄 아는 사람, 외국 사람들은 들어보지도 못한 술로 폭탄주를 마시는 사람…. 열거하기도 역겨운 일들이 거의 예사처럼 여겨지고 있다. 가난했던 민족이 너무 고생만 하다가 급기야 전쟁까지 치렀으니 그렇기도 하겠지. 밥과 먹을 것에 관한 우리말 표현이 얼마나 많은지 꼽아보면 알 만하다. 그러나 그렇다 하기로 굶는 사람의 비율이 전과 다른 지금 그나마 실질적인 일은 밥통(위장)을 채우는 일이요, 그리고 나서 남는 돈은 어디에 쓸 줄을 모르니 이 민족이 불쌍하지 않을 수 있는가.
2차대전이 끝난 직후 먹을 것, 입을 것이 제대로 없던 상황에서도 유럽인들은 오페라를 무대에 올렸다. 영국의 벤저민 브리튼이 걸작 오페라를 연속적으로 만들어낸 시기도 이 때다. 이들에게 오페라는 고픈 배를 채워주는 밥과 마찬가지였다. 지금 우리 경제 사정이 나쁘다지만 당시 유럽의 상황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경제적 여유가 있을 때 문화에 관심을 돌리게 되지만 실은 「여유」라는 말도 상대적이다.
문제는 여유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논의할 겨를조차 없다는 점이다. 너나없이 돈독이 오르고 탐욕의 노예가 되어있는 듯하다. 배고픈 것을 면했다는 지금 정신적 영양실조는 전쟁 때만도 못하다. 이를 치료하는 방법은 정신의 양식을 섭취하는 일이다. 국가의 존망을 걸고 온 국민이 이 길로 노력해야 한다.<조성진 예술의전당 예술감독>조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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