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대통령과 드라마/송지나 방송작가(1000자 춘추)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대통령과 드라마/송지나 방송작가(1000자 춘추)

입력
1997.02.28 00:00
0 0

드라마를 쓰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으로서 일종의 직업병 같은 걸 갖고 있다. 누구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그를 관찰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언행 몇가지를 가지고 그의 성격을 정리해 보기도 하고 그의 과거사까지 추측해 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아, 이런 인물형이라면 드라마에서 어떤 역할을 맡기면 재미있겠다, 신선하겠다』라고 혼자 좋아하거나 감탄한다.요즈음 가장 흥미있는 분석대상은 아무래도 현직 대통령이다. 신문이나 잡지에는 그의 인간형에 대한 풍부한 자료로 넘쳐난다. 그런 조각들을 이리저리 맞추면서 대통령이 소위 가신들 앞에서 어떤 말투를 구사할지, 또는 방문 닫고 혼자 들어앉아 어떤 표정을 지을지 따위를 상상해보는 것은 여간 재미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인물분석이란 것이 그렇다. 사람들을 표피적으로만 보자면 백이면 백 다 그렇게 다를 수가 없다. 누구 하나 같은 성격이나 같은 사고를 가진 사람이 없다. 그러나 한층 더 깊이 들어가보면 대개는 다 비슷하다. 도토리 키재기처럼 특별히 훌륭한 사람도, 특별히 악한 사람도 없다. 대통령끼리만 놓고 봐도 그럴 것이다. 세계의 어떤 대통령을 데리고 와서 비교해 봐도 대충 비슷한 양의 양심과 허영심 따위를 가지고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누구는 훌륭한 대통령이 되는 것이고, 누구는 한심한 대통령이 되는 것일까.

드라마적인 문법으로 표현하자면 인물설정과 상황설정의 문제다. 작가들은 일단 인물을 설정해놓고 나면 그들이 처한 상황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면 그 상황에 따라 인물들은 악하게 선하게 또는 불쌍하게 행복하게 풀려나갈 수가 있다. 인물만 있고 상황이 없으면 작품은 만들어질 수 없다.

요즘 시국을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미완성 작품만 가지고 떠들썩한 듯하다. 실은 대통령의 자질이나 인간성이 문제가 아닌 것이다. 어떤 인물이 대통령이 되어도 끄떡없는 사회를 먼저 만드는게 순서가 아닐까. 대통령의 한마디에 좌지우지되는 검찰이나, 원칙보다는 당론이 우선되는 국회가 포진하고 있는 한, 심지어 링컨이 살아와도 훌륭한 대통령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제대로 된 검찰이나 국회 등을 만드는 것조차 대통령의 말한마디에 달려 있다고? 아, 그렇다면 이 드라마는 당분간 완성이 되지 못할 것 같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