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받아도 처벌하지 않을 수 있고, 안 받아도 처벌할 수 있다」―마치 손오공의 여의봉처럼 제멋대로인 이 말을 이제 모르는 사람은 없다. 어느새 「문민검찰」의 가당찮은 수사잣대가 되어버린 검찰 스스로의 이 「명언」을 뉘라서 감히 가볍게 흘려 버릴 수 있을 것인가.「명언」은 또 있다. 엊그제 여당이 노동법재개정안에서 정리해고제를 전면 삭제키로 했다지만 오히려 「현정권과 검찰이야말로 정리해고의 대상이어야 한다」는 국회에서의 발언이 그것이다.
그리고 「검찰잣대」 시리즈의 완결편이라 할 메가톤급 포효도 터져나왔다. 혼탁한 이 시대를 혼자서라도 바로 잡아보려는 우리 사회의 한 자경단원(Vigilante)이라 할 재이손산업의 이영수씨가 「마피아의 총대로 만든 잣대」라는 제목의 조간신문 자비광고를 통해 국민의 이름으로 「검찰해고」를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검찰에 대한 불신이 이미 오래전부터 싹터 왔다지만 그 강도가 지금처럼 강한 적은 일찍이 없었다. 검찰 스스로가 문민시대라면서도 파사현정이라는 기개와 용기를 잃은 것은 물론이고 검찰권 독립행사를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의 활용과 자존심 지키기마저 포기, 권력의 시녀로 추락을 거듭해 온 결과라 는 비판이 팽배해 있는 것이다.
지금 대충 꼽아봐도 「문민검찰」의 비극적 추락상은 열손가락으로 꼽아도 모자랄 정도다. 「성공한 쿠데타 운운…」의 해괴한 논리에 바탕한 기소유예와 번복소동, 전직대통령 비자금사건에서의 헐거운 뇌물제공자 단죄, 청와대가신 장학로사건에서의 그 유명했던 21억원 떡값 무죄론이 쉴새없이 터져나왔었다. 또한 선거사범 수사에서의 잦은 기소유예와 그로 인한 법원의 재정신청수용, 배후수사에 한계를 보인 슬롯머신 및 카지노수사와 법원측에 의한 주범 법정구속사태, 그리고 국민의 90% 가까이가 「못믿겠다」고 반발한 이번 한보사건수사와 김현철씨에 대한 면죄부 주기조사 등등마저 줄지었으니 어찌 「해고」직격탄을 피할 수 있었으랴 생각되는 것이다.
더욱 비극적이라 할 것은 김영삼 대통령은 특별담화를 통해 국민앞에 처절하고 침통하게 거듭 사죄하는 자세를 보였는데, 검찰내부에서는 그런 자성의 움직임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검찰일각에서 한보수사 후 쏟아지는 비난앞에서 망연자실, 검찰은 「해결사」도 「쓰레기하치장」도 아니라며 권력에 의해 검찰만 덤터기 쓰게 된 것에 대한 볼멘소리는 더러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불신의 수렁에서 벗어나 검찰 본래의 사명감을 되찾으려는 의욕과 목소리는 여전히 찾을 길이 없는 오늘인 것이다.
이제 「해고」대상이 되어버린 가련한 우리 검찰이 갈 곳은 과연 어디인가. 그 해답을 놓고 특별검사제의 도입촉구와 함께 한보재수사 요구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위기국면을 검찰은 이제라도 깊이 통찰해야 한다. 검찰풍토를 근본적으로 다시 짜야한다는 국민적 요구앞에서 특별검사제가 안고 있는 법체계상의 문제점 정도나 나열하는 식으로 안이하게 대응할 시점은 이미 지났음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국민적 요구에 따라 권력의 시녀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는 결단만이 남아 있을 뿐인 것이다.
정치적 부정부패가 심한 풍토에서 바람직한 검찰상의 귀감을 보인 이탈리아의 전직검사 피에트로씨는 지난해 한국을 방문, 검찰이 우리처럼 행정부 소속이 아니라 사법부 소속으로 중립성과 독립성을 보장받고 있어 간섭없는 부정 부패추방이 가능했다고 밝힌바도 있었다.
이탈리아와는 법체계가 다르기에 이제 와서 우리 검찰을 사법부 소속으로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현행 법체계안에서도 대통령이 검사를 임명하는 검찰청법에 따라 국회의 요청 등이 있을 경우 변호사 등 중립적 법조인을 검사로 임명해 특별검사제의 효과를 볼 수도 있다는 재야법조계의 주장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특별검사제가 아니라 해도 우리와 법체계가 같은 이웃 일본 도쿄(동경)지검특수부처럼 온갖 압력과 성역을 대쪽같은 사명감과 용기로 이겨내려는 의지와 전통만 있으면 어떤 권력도 결코 검찰을 쉽게 넘볼 수는 없는 법이다. 워터게이트사건에서 명성을 얻었던 미국의 제임스 콜 특별검사, 다나카 총리를 구속시킨 일본의 요시나가 유스케 전 검사총장 등의 「국민이 알고 싶은 것을 수사 안하면 직무유기」라는 질타는 검찰권 독립이란 법과 제도에 앞선 검찰 스스로의 자세와 전통의 내부 문제임을 우리에게 일러주는 것이다.
우리 검찰이 하루 빨리 그걸 깨우치지 못한다면 오늘과 같은 검찰의 비극은 쉽게 끝날 수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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