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 임금 세계 최고 “투자 기피”/물가도 잡아 악순환고리 끊어야한국의 제조업 임금은 세계 최고수준이다.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이를 믿으려 하지 않겠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임금의 절대적 수준은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낮다. 그러나 1인당국민소득(GNP)을 감안한 상대적 수준은 세계 최고다.
한국이 세계경제구조속에서 「투자의 사각지대」, 또는 「투자의 섬」이 되어버린 것도 바로 이같은 고임금구조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외국기업은 물론이고 국내기업마저 한국에 공장짓는 것을 기피하고 있다. 외국기업의 한국투자는 끊긴지 오래됐다. 국내기업들도 사양산업에서 첨단산업에 이르기까지 이땅을 탈출하고 있다. 한국근로자들의 일자리와 함께 국가경제의 성장잠재력이 경쟁국으로 유출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노동부가 조사한 「95년 주요국가별 임금수준(제조업)」을 보면 한국의 시간당 평균임금은 7.4달러이고 미국 17.2달러, 일본 23.66달러, 스위스 29.82달러, 싱가포르 7.28달러, 대만 5.82달러, 홍콩 4.82달러 등이다. 미국 일본 스위스 등 선진국의 경우 1인당GNP가 우리의 3∼4배인 점을 감안할 때 상대적 임금수준은 한국이 가장 높다. 싱가포르 대만 홍콩 등 아시아의 선발개도국의 경우 1인당GNP가 한국의 1.5∼ 2배에 이르고 있으나 임금의 절대적 수준은 우리보다 낮다. 삼성전자의 사례를 보면 한국이 왜 「투자의 섬」이 되어버렸는지 알 수 있다. 한국공장의 경우 근로자 1인당 월평균 임금총액(96년)이 1백14만7천원으로 영국 윈야드공장(1백11만1천원)보다 3만6천원 많다.
한국의 제조업임금은 87년 6·29선언이후 95년까지 연평균 16.1%씩 올랐다. 반면 일본과 미국의 임금은 이 기간에 각각 연평균 2.8%, 2.7% 오르는데 그쳤고 싱가포르(9.2%)와 대만(9.8%)도 한자릿수를 유지했다.
한국경제의 「끝없는 추락」은 이미 이때 예고됐는지도 모른다. 경제위기의 첫번째 원인으로 고임금이 거론되고 있지만 사실 근로자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다. 근로자에게 임금인상 자제를 요구할 때는 물가안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또 기업경영자는 물론 정치지도자들이 기업돈을 경영외적 용도로 빼돌려서는 안된다. 불행하게도 그동안 이 조건은 충족되지 않았다. 근로자들의 생활물가는 해마다 10%이상 올랐다. 그동안 잠잠하던 집값 전셋값마저 지난연말부터 뛰고 있다. 위정자들과 일부 기업경영자들의 탈선은 근로의욕을 상실케 하기에 충분하다. 한보사태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물가가 치솟는 상황에서는 임금이 아무리 올라도 근로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별로 없다.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고임금에도 불구, 공복감이 여전한 것도 이 때문이다. 87년 민주화조치의 보상으로 임금상승이 이루어졌으나 정작 「삶의 질」이 크게 나아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근로자들은 경쟁력 약화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경제는 이 와중에서 「고임금―고물가―저성장」의 악순환을 거듭, 급기야는 총체적 위기국면으로 치닫고 말았다. 경제구조를 「저임금―저물가―고성장」의 선순환으로 돌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고임금과 고물가를 동시에 해결하는 지혜를 발휘할 수 밖에 없다. 우선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이 대규모 적자를 내며 침몰위기에 놓여 있는데 그 구성원들이 자기몫을 더 달라고 주장할 수는 없는 일이다. 회사가 부도나버리면 삶의 터전인 일자리가 없어지고 임금협상도 노사분규도 소용없는 일이 되고 만다. 배가 완전히 침몰하기 전에 일단 구조해 놓고 봐야 한다.
제조업의 경우 올해 임금을 10% 올리는 대신, 임금총액을 동결하게 되면 전체적으로 약 3조6천억원의 여유자금이 생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해당 기업으로서는 이만큼 경쟁력강화의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
미국 일본 프랑스 싱가포르 등 선진국들도 경제가 위기국면에 처할 경우 임금동결을 골자로 한 소득정책을 동원하곤 했다. 선진국의 소득정책이 모두 성공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소득정책이 경제위기극복의 유력한 해법인 것은 분명하다. 싱가포르의 소득정책은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싱가포르는 85년 심각한 경기불황에 직면했을 때 임금을 전면동결하는 특별조치를 취했다. 싱가포르는 이에 힘입어 85년 마이너스 1.6%, 86년 1.8%로 내려 앉았던 경제성장률을 87년 9%로 끌어올린후 지금까지 고도성장을 누리고 있다.
경제위기 탈출구는 고임금해소에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물가안정과 위정자들의 도덕성이 전제되어야 한다.<특별취재팀>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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