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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속운영 실태·원인(흔들리는 학부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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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속운영 실태·원인(흔들리는 학부제:2)

입력
1997.0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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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학과끼리 “한묶음”/인기과 이용 신입생 미달막기/교과과정 예전 그대로 “무계획”지방 모대학은 지난 해 학부제를 시행하면서 사회계열인 신문방송학과와 인문계열인 철학과 사학과를 단일학부로 묶었다. 이른바 「잘 나가는 학과」의 인기를 이용, 미달사태를 빚는 다른 학과의 정원을 메우겠다는 발상이었다. 서울의 한 대학도 학문적 연관성이 희박한 가정관리·식품영양·의류학과를 생활과학부로 묶어 교수 학생들의 반발을 샀다. 취업이 잘 안되는 가정관리학과의 입학정원을 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게 학교측의 설명이다.

학부제가 표류하는 이면에는 대학당국의 끼워팔기식, 편의적 학부구성이 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학부제에 대한 아무런 준비나 검토없이 시행된 졸속운영이 빚어낸 결과다. 무원칙한 학부제 시행의 또 다른 사례는 충청지역의 모대학. 올해 공대 자연대 등 5개 단과대 23개 학과를 5개 학부로 묶어 신입생을 선발했지만 전공 배정시기나 기준 등 어느 것도 정해진 게 없다. 무턱대고 학생만 뽑아놓은 것이다. 지방 모대학 총학생회장 임모(22)씨는 『학부제의 전제인 연구중심, 대학원중심 대학으로의 장기발전계획이나 뚜렷한 비전이 없이 「웬만한 대학이 다 하니까 따라가자」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교과과정 편성과 운영에서도 졸속시행의 문제점이 잘 드러난다. 학부제 실시에 따라 교과과정이 바뀌어야 하지만 대다수 대학이 종전과 같은 교과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학부제 실시의 조건으로는 다전공(복수전공)제가 필수적이지만 전공학점의 비중이 여전히 높아 쉽지 않다.

대학당국자들은 학부제가 졸속이 된 데는 교육부의 밀어붙이기식 추진방법에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95년 교육부가 「학부제를 하지 않으면 행·재정지원도 없다」는 식의 행정지도를 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학부제를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 일례로 95년 5월 교육부가 특별재정지원을 해주는 「대학원 중점육성 대학」을 선정하면서 신청자격을 학부제 시행대학으로 한정, 서울대 자연대와 연세대 이학부 등 많은 대학이 무리하게 학부제를 시작했다. 이들 대학 중에는 해당대학 교수들과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고 학부제안을 만든 뒤 일방적으로 통보해 마찰을 빚은 대학도 상당수다.

서울 K대의 경우 자연자원대에서 식품공학과와 유전공학과를 떼어내 생명과학부를 만들면서 대학당국이 단과대의 의견수렴 없이 추진하다 교수들이 총장실 점거농성을 하는 등 진통을 겪었다. 서울의 한 대학교수는 『교육부의 「엄포」때문에 마지 못해 학부제를 시행했지만 후회막급』이라며 『학과체제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있지만 혼선이 우려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의 한 교수는 『학부제의 파행은 교육부가 대학별 특성을 무시하고 일률적으로 학부제를 권유했기 때문』이라며 『학부제는 학문연구를 위해 대학원을 진학하는 인재양성에 도움이 되는 만큼 취업위주로 대학교육이 운영되는 지방대 등 상당수 대학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지적했다.<윤순환·김정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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