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순자 이한영씨가 끝내 숨졌다. 지난 15일 밤 임시로 몸을 의탁하고 있던 친지의 아파트 현관 앞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 2명에게서 총격을 받고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에 실려간 뒤 한번도 의식을 되찾지 못해 한마디 말도 남기지 못하고 짧은 인생을 마감했다.그의 죽음은 한 자연인의 죽음과는 그 의미가 크게 다르다. 김정일의 동거녀로 알려진 성혜림의 조카인 그는 600여명의 귀순자중 테러에 의한 첫 희생자가 됐다. 정부와 국민은 우리의 체제를 택해 목숨을 걸고 찾아온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책무가 있다. 그런데도 정부와 국민은 어느 쪽도 그를 보살피기에 소홀했다. 경찰은 그가 자기 관할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사실조차 몰랐다. 이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가 있는가.
정부는 600여명의 귀순자 가운데 70여명은 특별관리, 나머지는 일반관리 대상자로 분류해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이씨는 귀순한지 14년이나 돼 일반관리 대상자라고 하나 경찰이 주거지를 옮기는 일도 몰랐다면 관리의 울타리를 크게 벗어나 있었다는 증거이다. 더구나 황장엽 북한 노동당비서의 망명신청으로 북한의 보복테러를 우려한 비상경계령이 내려진 상황에서 당연히 제1급 테러표적으로 분류될 그의 소재조차 파악하지 않았다는 것은 직무유기나 다름 없었다.
주변의 책임도 있다. 그는 생계문제로 몸부림치다시피 해왔다고 한다. 그를 따뜻이 감싸고 포용하지 못한 책임이 당국에만 있다고 할 일은 아니다. 물론 그 개인의 불찰도 크다. 스스로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매스컴에 등장해 김정일과 북한 권력층의 비밀을 고발한 일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었다. 더구나 책을 펴내고 TV 토크쇼에까지 출연한 것은 스스로 묘혈을 판 것이나 다름 없는 일이었다. 그가 안정된 직장을 가졌더라면 북한의 테러를 겁내 몇차례 성형수술까지 한 그가 스스로 얼굴을 세상에 드러내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북한에서 최고수준의 대우를 받아온 그는 82년 스위스 유학중 비밀리에 귀순, 상당액의 지원금을 받고 정부가 알선해 준 안정된 직장에서 평범한 새 생활을 해왔다. 한국에서 영원히 살겠다는 뜻에서 「한영」이라고 이름까지 고치고 성실히 살았다. 그러나 주택조합 사업에 관여하다 고소를 당해 구속된 일이 그의 인생을 뒤틀리게 했다. 일확천금을 꿈꾸며 사업에 손을 대기도 했지만 번번이 실패해 자본주의 사회의 냉혹성에 절망하기도 했다고 한다.
분단의 새로운 비극인 그의 죽음은 앞으로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를 우리의 귀순자 관리정책에 깊은 성찰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아울러 귀순자가 입국할 때마다 떠들썩하게 보도하고, 기자회견을 통해 그들을 발가벗기다시피 하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인지도 재고해 볼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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