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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을 위한 정부?/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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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을 위한 정부?/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한국논단)

입력
1997.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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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정부 통치 4년/개혁구호 무성했지만 생활정책 실패·표류/국민가슴엔 허망함만민주정부가 출범한 지 이제 4년이 되었다. 그리고 정권교체와 관련된 이런 저런 논의가 무성한 시절로 접어들었다. 권위주의정권을 끝장내고 기세등등하게 등장했던 민주정부가 통치 4년만에 변명도 궁색해지는 상황에 봉착하게 되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슬픈 일이다. 이 시점에서 집권 초기의 그 화려했던 구호들을 생각해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제는 「고통분담론」도, 「세계화」도, 그 산뜻한 의미가 퇴색하였으며 「한 푼도 안받겠다」는 의지어린 다짐도 돈을 제대로 쓸줄 모르는 어리석은 정부의 변명 쯤으로 들리게끔 되었으니까.

그래도 어려웠던 상황에서 나름대로 일구어낸 치적에 인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른바 「제3의 민주화 물결」에 속한 국가들과 비교하여 한국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룬 것은 사실이다. 군부의 눈치를 살필 필요는 없어졌으며, 지난 시대의 정치비리가 파헤쳐져 국민들의 심판을 받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민주화 4년의 결과가 어떤 단단한 결실감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은 왜일까? 단적으로 말하면, 허망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 요즘 국민들의 공통된 심사이다. 무엇보다, 그 요란했던 개혁이 서민들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를 이 시점에서 자꾸 반문하고 싶은 것이다.

개혁은 금방 효과를 나타내지 않는만큼 조금 인내심이 필요하기는 하다. 그런데 지난 4년을 수놓았던 개혁정치가 국민들의 짓눌렸던 심사를 달래주었던 것 외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선사해주었는가를 생각하면 상당히 회의적이다. 금융실명제에 불편해 할 사람들은 전국민의 1%에 불과한 불로소득자와 금융자산가들이며, 정치자금법을 위시한 정치개혁은 원상회복 수준에서 「그들」의 일이며, 사정개혁과 행정쇄신 역시 의당 그래야할 정부의 몫이다. 이에 비하면, 서민생활에 직결된 개혁정책들은 대부분 실패했거나 표류중이다. 그 요란했던 교육개혁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학비부담은 결코 줄지 않았으며 수능성적이 학부모의 경제능력과 비례하는 정도도 완화되지 않았다. 사법개혁의 알맹이는 일찍이 제거되어 법률가 생산기제와 법률서비스의 내용은 변화하지 않았다.

또한, 주택정책은 「200만호 건설」이라는 공급중심의 구시대적 정책을 여전히 답습하고 있고 고급인력의 명퇴와 청년실업의 위기에 적절한 처방책이 마련되지 않았다. 노동법안을 다루면서 드러낸 미숙한 정치술 때문에 1조원에 달하는 경제손실을 입었으며, 경제침체를 반전시키는 돌파력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현정권은 개혁구상과 개혁안을 무성하게 만드는 정권일 뿐 서민생활의 고뇌를 진정으로 덜어주는 정권은 아니다. 복지구상안이 의기양양하게 발표되었지만, 피부에 와닿는 새로운 복지혜택이 있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민심이 이탈하고 개혁에의 회의가 팽배해지는 요즘 아무런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는 현정부의 궁색한 면모에서 보완 개혁의 레퍼토리는 커녕 초기 개혁을 지탱해나갈 의지도 능력도 발견하기 힘든 상황이다. 현정권의 초기구상에서 서민정치는 애초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정권보다 국민들의 안위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민주정부의 제일의 본분이다. 그런데 요즘 잇달아 발생하는 충격적인 사건들에 벌거숭이처럼 노출되어 국민들은 마치 보호자를 잃어버린듯한 심정일 것이다. 선진입국에 필요한 과제가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한보부도, 노사분규, 황장엽망명, 경기침체, 국제수지악화, 정권의 내부갈등 등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태에 봉착해 있다. 어떤 정권도 한두번의 위기는 겪게 마련이지만, 문제는 이것을 개혁의 후유증이라고 봉합해 두기에는 너무도 큰 위기적 징후라는 점이다. 현정권이 어느 정도의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줄는지 의문이지만 이런 시점에서 새로운 서민정치를 기대하는 철없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현재의 위기가 국민들을 실의에 빠지지 않도록 적어도 안전판 역할만이라도 충실히 해달라는 부탁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현정권으로서는 처음 맞는 위기이지만 국민들은 여러번 이런 위기를 돌파해온 지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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