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귀를 찬 민주국가(Democracy in diaper)」가깝게 지내던 미국친구와 며칠전 전화로 서울얘기를 나누던 중 태평양 건너편으로부터 듣게된 말이다. 최근의 한국사태에 대해 지나치게 비관하지 말라는 격려의 말 끝에 이어진 표현이었으나, 제국주의적인 우월감마저 느껴져 기분이 상했다.
미국 꼬마들이 상대를 놀릴 때면 「아직도 기저귀를 차는 주제에!(You, diaper!)」라고 소리를 치는데, 나의 미국친구도 그런 뉘앙스로 기저귀란 말을 썼음이 틀림없다. 「기저귀…」는 과거 미국언론이 중남미 국가들의 총체적 혼돈상을 설명하면서 자주 써먹던 말이다.
하지만 불쾌한 감정을 억누르고 곰곰이 따져볼 때 친구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아직도 「미국 물」이 덜 빠진 탓일까? 3년동안 워싱턴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다시보는 「신한국」의 모습은 한마디로 처참하다.
「한보」와 무관하다는 청와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시종 수세적인 입장에서 변명에만 급급하고 있다. 행정부도 전시내각처럼 허둥댄다. 정치판의 수준도 나아진게 없다. 민생은 돌보지 않고 딴 살림을 차린 듯한, 얼핏 보기에는 비슷비슷한 도덕적 난쟁이들이 「대권도전」의 팻말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무엇보다도 이런 「한국병」 치유의 대임을 맡은 우리 지도자는 불행하게도 권위주의적 통치에 연연하는 소위 「시저(Julius Caesar)병」을 끝내 이겨내지 못한채 불안한 말기를 맞고 있다.
이같은 혼란의 와중에 경제는 장기불황의 문턱을 기웃거리고, 공무원은 민원인 위에 군림하며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교사마저 제자에게 과외를 권하는 세상이라니 말문이 막힌다.
정부는 그렇다치고 국민 개개인의 의식수준도 3년전보다 결코 나아진게 없는 듯하다. 국가적 성숙을 이루기란 이렇게도 힘든 일인가?
더 이상 「기저귀를 찬 국민」이라는 조롱을 듣기싫은 사람은 혼자서라도 무기력의 수렁을 박차고 일어나 성숙한 시민으로 거듭날 각오를 다져야한다.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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