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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취임 4주년’의 각오(장명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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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취임 4주년’의 각오(장명수 칼럼)

입력
1997.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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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년 겨울 대통령 선거운동이 한창일 때 아버지를 위해 열심히 뛰고있는 김영삼씨의 따님들 중 한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오랜 군사독재 아래 어려웠던 시절을 이야기하다가 이렇게 말했다.『아버지는 사자가 새끼들을 절벽 아래로 밀어 떨어뜨린 후 자기 힘으로 기어올라오게 하는 식으로 자식들을 대하셨어요. 아버지는 목숨을 걸고 싸우셨지만, 우리도 어려운 때가 많았지요. 취직도 결혼도 비자얻기도 힘들었어요. 도와주지 않는 아버지가 야속하기도 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아버지에게 폐를 안끼치고 살아온 것이 기뻐요』

그해 김영삼씨의 선거캠프에 합류했던 한 참모는 이렇게 말했다.

『그가 전혀 메모를 안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 복잡한 일정, 약속,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그는 머리 속에서 관리하고 있었어요. 오랜 세월 정보기관에 시달리며 기록을 남기지 않았던 습관임을 나중에야 알았지요』

김영삼씨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조각을 할 때 몇사람의 인선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정보기관들의 자료를 전혀 참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정보정치, 공작정치의 피해자였던 그는 정보기관들을 철저하게 불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 네돌을 맞아 발표한 우울한 담화문을 일본에서 팩스로 받아 읽으면서 나는 그가 대통령이 된 후에도 반체제 투사의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게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그는 민주화 투쟁을 하는 동안 권력주변에 불나방처럼 모여있는 권력지향 인물들의 행태를 보았기 때문에 그들을 근본적으로 믿지 않았고, 대통령으로서 중요직책에 인물을 발탁해 쓰면서도 그런 의식이 마음 속에 깔려 있었던 것 같다. 세상을 알기에는 아직 나이 어린 아들에게 여러모로 의존했던 것은 어떤 다른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타인을 믿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의 인기에 지나치게 집착했던 것도 투사 시절 피해의식의 발로이다. 그 오랜 싸움에서 그의 목숨을 지켜준 것은 소리없는 국민의 성원이었다. 국민의 관심과 지지를 잃는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는 대다수 국민의 지지로 대통령이 된 후에도 인기가 내려가면 불안을 느꼈고, 모든 일에서 대통령 홀로 빛나기를 원했다. 자신이 임명한 사람들을 믿지 않는데다가 매사에 대통령의 결단과 추진력이 돋보이기를 원하다 보니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고, 오히려 국민의 인기를 잃는 원인이 됐다.

<…30여년의 기나긴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서 저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것은 국민 여러분이었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피와 땀과 눈물로 마침내 문민정부가 출범했을 때 저는 국민의 은혜와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신명을 다 바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한국병을 고쳐 후손들에게 자랑스런 조국을 물려주자는 것이 저의 꿈이었습니다…> 라고 대통령은 우울한 취임 4주년 담화에서 회고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취임초의 각오로 돌아가 남은 1년동안 시대의 소명을 다하겠다고 국민의 새로운 성원을 호소하고 있다.

그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피와 땀과 눈물로 문민시대를 열었던 국민은 오늘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 여론의 화살에 갇혀있는 불행한 대통령을 구해줄 수 있는 것은 「정의」의 힘밖에 없다. 과거에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국민의 인기 때문이 아니고, 반독재 민주화투쟁이라는 정의로운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지금 그는 민심얻기에 조급해 하지 말고, 무엇이 진정으로 옳은 길인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

이제 「대통령 때리기」를 멈추고, 대통령에게 기회와 시간을 줌으로써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국민의 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그들은 대통령의 선택이 옳기만 하다면 다시 그를 성원할 것이다. 자식을 절벽 아래로 떨어뜨려 자력으로 살아남게 한다는 불평을 듣던 아버지가 왜 아들을 「소통령」으로 만들게 되었는가. 대통령은 자신의 피해의식에 대해서도 깊이 성찰하고 마음을 열어야 한다.<이사 편집위원·도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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