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부덕 탓”“아들 허물은 아비의 허물”/측근 부정부패 연루 고개들 수 없어/깨끗한 인재 광범위하게 구하겠다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은 제가 대통령직을 맡은지 만 4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 뜻깊은 날, 저는 참으로 괴롭고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국민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4년전 저는 취임사에서 우리 모두 신한국 창조의 꿈을 안고 「변화와 개혁」에 나서자고 호소했습니다. 급변하는 세계속에 우리가 번영해 나가려면 우리의 제도와 의식과 행동양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수많은 어려운 고비를 넘으며 줄기차게 변화와 개혁을 추구해 왔습니다.
저는 그 중요한 고비마다 무엇이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올바른 것인가를 고뇌하며 밤을 지새웠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고독한 과정이었습니다. 어렵고도 험난한 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것이 나라와 겨레를 위한 것이라는 믿음에서 외로움과 어려움을 보람으로 삼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살아온 삶은 국민 여러분을 떠나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30여년간의 기나긴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서 저에게 희망을 준 것은 바로 국민 여러분이었습니다. 저에게 용기를 준 것도 국민 여러분이었습니다. 여러분의 피와 땀과 눈물로 마침내 문민정부가 출범했을때 저는 마음속에 굳게 다짐했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은혜와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저의 신명을 다바치겠다고 스스로 맹세했습니다.
여러분과 더불어 한국병을 고쳐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조국을 물려주자는 것, 그것이 저의 꿈이었습니다. 오로지 그 한뜻으로 불철주야 달려온 것이 저의 지난 4년이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들이 거둔 여러가지 개혁의 성과는 전적으로 국민여러분의 인내와 성원 덕분이었습니다.
한편 개혁의 과정에서 미흡한 점과 시행착오로 국민 여러분에게 불편과 고통을 가져다 준 적도 없지 않았습니다.
저는 남은 임기동안 개혁의 미비점을 보완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개혁은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입니다. 일시적 고통이 따르더라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합니다.
국민 여러분. 지금 나라 전체가 「한보사건」으로 인한 충격에 휩싸여 있습니다. 지난 4년간 오직 절제와 금욕으로 한 길만을 달려온 저로서는 처절하고 참담한 심정입니다.
더욱이 이번 사건으로 국민 여러분께서 입은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위로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여야의 중진 정치인 뿐아니라 저의 가까이에서 일했던 사람들까지도 부정부패에 연루되었으니 국민 여러분께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신한국을 만들기 위한 우리 모두의 노력이 농락당한 느낌마저 듭니다.
그러나 이유야 어떠하든 이 모든 것은 저의 부덕의 결과입니다. 대통령인 저의 책임입니다.
저는 국민 여러분의 그 어떤 질책과 비판도 겸허히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대통령으로서 이번 사건에 대하여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국민 여러분. 그동안 문민정부는 변화와 개혁의 최우선 과제를 부정부패의 척결에 두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저 자신 대통령으로서 누구보다 앞장서 잘못된 정치관행과 단절하고자 추상같이 처신해 왔습니다.
그것은 과거 모든 부패의 뿌리가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핵심에서부터 비롯되었음을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자 여당 총재부터가 단호한 결의로 솔선한다면 모든 정치인들과 공직자들도 따라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이와함께 부패의 근원적인 예방을 위해 우리는 많은 법과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공직자 재산공개, 금융실명제, 정치개혁입법 등을 과감히 단행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한보사건」은 아직도 부패한 정치와 정경유착의 관행이 우리사회 일각에 뿌리깊게 남아 있음을 충격적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참으로 통탄스러운 일입니다. 저를 더욱 괴롭고 민망하게 하는 것은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제 자식의 이름이 거명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진실여부에 앞서 그러한 소문이 돌고있는 사실 자체가 저에게는 크게 부끄러운 일입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아들의 허물은 곧 아비의 허물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매사에 조심하고 바르게 처신하도록 가르치지 못한 것, 제 자신의 불찰입니다. 만일 제 자식이 이번 일에 책임질 일이 있다면 당연히 응분의 사법적 책임을 지도록 할 것입니다. 또한 제가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에는 일체의 사회활동을 중단하는 등 근신토록 하고 제 가까이에 두지 않음으로써 다시는 국민에게 근심을 끼쳐드리는 일이 없게 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죄송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의 현실이 아무리 개탄스럽다고 하더라도 낙심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숱한 도전들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의 이 비상시국을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를위해 우선, 이번 사건에 대한 검찰의 중간 수사발표가 있었습니다만, 관련자들은 신분과 지위를 막론하고 그 누구라도 사법적 책임을 철저하게 가려서 단죄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책임정치와 책임행정의 구현을 위해 정책차원에서 「한보사건」의 원인과 경위를 밝히고 관계자들의 정치적·행정적 책임도 물을 것입니다. 저는 이번 사건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와 국민적 부담을 최소화하고 경제의 활력을 하루빨리 되살리기 위해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저는 심기일전하여 다시 취임초의 각오와 자세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이제 새로운 출발선에 서서 앞으로 1년간 다음 네가지 과제의 해결에 진력하겠습니다.
첫째,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노력을 가일층 강화할 것입니다. 특히 비리와 부정의 소지 자체를 없애도록 제도를 개혁하고 보완하는 데 치중하겠습니다. 각계의 폭넓은 의견을 수렴하여 필요하다면 정치자금법과 선거법도 다시 고치겠습니다. 금융비리를 근원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금융개혁도 가속화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이번 사건이 정경유착과 금권정치를 근절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도록 할 것입니다.
인사개혁도 단행하겠습니다. 깨끗하고 능력있는 인재들을 광범위하게 구하여 국정의 주요 책임을 맡기겠습니다.
둘째, 「경제 살리기」에 총력을 경주하겠습니다. 지금 우리의 경제상황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이대로 방치하면 우리나라가 자칫 삼류국가로 전락할 위험성마저 있을 정도입니다. 저는 우리 국민과 기업, 근로자들이 경제의 어려움 때문에 고통을 받고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일시적인 고통이 따르더라도 우리의 경제발전을 가로막고있는 「고비용·저효율」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노사간에 대화합을 이루어 산업현장에 활기를 회복함으로써 우리 경제를 살리는 일입니다. 저는 지난해 말 이루어진 노동관계법 개정의 처리과정에서 국민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우리의 경쟁력을 높이고 노와 사의 의견도 균형있게 반영한 훌륭한 법률이 여야합의로 마련되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기업들의 투자의욕을 높이고 경쟁력을 회복하는 일 또한 대단히 중요한 과제입니다. 뿐만 아니라 젊고 패기있는 세대들이 손쉽게 창업할 수 있는 여건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할 것입니다.
특히 중소기업과 영세 상공인들에 대한 지원방안과 근로자들의 고용안정 대책도 차질없이 신속하게 시행되도록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보사건」과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고 국민 모두의 소중한 자원이 생산적이고 효율적으로 활용되도록 관련제도를 선진화하는 데 힘쓰겠습니다.
셋째, 우리의 안보태세를 보다 강화하겠습니다. 북한의 앞날은 그 핵심인사의 망명사건이 말해주듯 불안정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에따라 우리의 안보상황 또한 중대한 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가 유린되는 사태는 우리 민족 전체에게 회복될 수 없는 재앙을 초래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희생과 대가를 치르고라도 우리의 안보를 굳건히 지켜야 합니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안보태세를 총점검하고 민·관·군 총력안보 체제를 재정비해 나갈 것입니다.
안보에 대한 위협은 나라 안에도 있습니다. 이제 어떤 명분으로도 국가안보를 해치는 언행은 용납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또한 국법질서를 확립하여 우리 사회의 기강을 바로잡아 나가야 하겠습니다. 저는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보위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데 맡은 바 소임을 다할 것입니다.
넷째, 금년에 실시되는 차기 대통령선거를 공정하고 엄정하게 관리하겠습니다. 특히 신한국당의 대통령후보 선출과정이 투명하고 민주적이며 공정한 경선과정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당원들의 결정을 전적으로 존중하고 지지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정당제도의 발전과 당내 민주주의의 진전에 획기적 계기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평생을 명예로운 민주화 투쟁에 바쳤고 이제 문민시대의 대통령으로서 제게 무슨 사사로운 욕심이 있겠습니까. 저에게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욕심이 없습니다. 오직 시대의 소명을 어김없이 실천하는 대통령으로서 직분에 충실하고자 할 따름입니다.
저는 오늘 임기 1년의 대통령직에 새로 취임하는 심경으로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저의 부족함에 대한 비판과 충언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앞으로 국민 여러분 곁으로 보다 더 가까이 다가갈 것입니다.
지난 반세기, 온 국민의 피와 땀과 눈물로 이루어낸 이 나라가 난파선이 되게 해서는 안됩니다. 세계가 찬탄하는 민주와 번영의 값진 성취를 물거품으로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민족은 항상 위기를 기회로 만들면서 역사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우리는 세계일류국가 건설을 위한 발걸음을 한시도 멈출 수 없습니다.
아픔과 분노, 허탈과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섭시다. 우리 마음을 모아 새로이 출발합시다. 모두가 힘을 합쳐 민족의 위대한 저력을 다시 한번 보여 줍시다. 그리하여 오늘의 고난을 내일의 영광으로 바꾸어 냅시다.
국민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재계반응/“경제회생 의지엔 큰 기대/말 아닌 실질대책 나와야”
재계는 25일 김영삼 대통령의 대국민담화가 혼란에 빠진 현 정국을 조기에 수습하고 국가경제 회생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며 환영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논평에서 『대통령이 한보사태 등에 대해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솔직하고 겸허한 자세로 사과하고 남은 임기동안 국정을 쇄신해 경제회복, 국가안보강화에 새롭게 매진하겠다는 각오를 다진 것은 흐트러진 민심을 추스르는 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를 표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대통령담화를 『국가경제회생에 국민적 총의를 모으기 위한 의지의 표명』이라고 평가하고 『이제 국민 모두 대통령의 솔직한 사과표명을 계기로 사회불안의 조기수습과 경제회생에 적극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총은 특히 『노동법 개정이 국가경쟁력 강화에 중점을 두고 이뤄지도록 공동노력해 장기적인 국가경제발전의 기반확립에 이바지해 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는 『부정부패의 척결과 경제살리기에 국정운영의 최우선을 두겠다고 밝힌 것은 침체된 경제를 회복시키고 사회안정을 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환영하고 『경쟁력 회복을 위해 고비용·저효율구조 개혁과 기업의 투자의욕을 높이는 한편 중소기업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것은 산업현장의 새로운 활력소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주요 기업들도 이번 담화가 정치·경제적 혼돈에서 벗어나 경제난국 타개에 나서는 전기가 되기를 기대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경제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대통령의 결연한 의지에 공감을 표시한다』면서 『말뿐인 대책이 아니라 기업과 경제를 살리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책 등 후속조치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주문했다.<김경화 기자>김경화>
◎시민반응/“한보배후 규명의지 부족/책임인정·사과는 긍정적”
각계 인사와 사회단체 시민들은 25일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 4주년 국민담화 내용중 책임 인정과 사과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부정부패 방지를 위한 구체적 조치나 한보의혹사건 배후규명 의지는 부족했다고 평했다.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 김기식 정책실장은 『김대통령이 이제야 국가적 위기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한 것 같다』며 『권력 핵심부의 부정부패를 뿌리뽑기 위한 부패방지법 제정 등 강력한 후속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김인회 변호사는 『한보의혹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는 의지표명이 부족하고 사회활동 금지조치로 현철씨에 대한 의혹이 말끔히 가실 지 모르겠다』며 『안기부법에 대한 언급이 없어 아쉽다』고 밝혔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김동완 총무는 『한보의혹사건 이전에도 부정부패, 비리사건은 많았다』며 『남은 임기중 정치·경제적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할 수 있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세대 한견우(법학) 교수는 『구체적인 대안제시보다 국민감정에 호소하는 사과에 그친 것 같아 위기정국을 풀어가는데 조금 미흡하다고 본다』며 『그러나 지위나 친소관계를 떠나 부정을 저지른 사람은 엄중 처리하겠다는 의지는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역 대합실에서 TV로 김대통령 담화를 지켜본 김판일(37·회사원)씨는 『최고 지도자가 연두기자회견 한달 만에 초췌한 모습으로 아들문제를 얘기하며 사과한다니 연민을 느낀다』면서도 『한보의혹사건 등에 대한 국민 분노를 달래기에는 너무 추상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길수(58·부산 금정구 구서2동)씨는 『국민이나 대통령이나 모두 의기소침해 있으니 나라가 어떻게 될 지 큰 걱정』이라고 우려했다.<이동국·정진황 기자>이동국·정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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