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관련업무 부처별로 갈래갈래/정부 아동상담소도 10여곳 뿐,턱없이 부족10대 가출을 막고 또 가출한 10대 청소년들을 보호할 제도적 대책이 전무하다시피 하다. 청소년 관련 업무가 정부 부처별로 갈래갈래 나뉘어 있어 일관된 정책대안을 만들기는 커녕 문제를 서로 떠넘기기 일쑤다.
과거에는 가정문제를 이유로 한 10대 가출이 대부분이었으나 최근에는 「도대체 이유를 헤아리기 힘든」예가 늘어나고만 있어 사회적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우선 집을 나온 10대들이 밥을 먹고 잠자리를 얻기위해 유흥가나 주유소 등으로 내몰리지 않아야 하며 우연한 가출이 재가출·상습가출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점에서 적절한 보호시설이 절실하다.
현재 정부의 가출 청소년 보호시설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아동상담소가 고작이다. 아동상담소는 서울 2개소 등 전국적으로 10여개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나 주무부처인 문화체육부도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유흥가 등지에서 쉽사리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중고생은 거의 아동상담소를 찾지않아 가출 중고생에게는 거의 행정력이 미치지 않고 있다.
YMCA(한국기독교청년회) 등 민간단체에도 가정집을 활용, 보호시설로 이용하는 「청소년 쉼터」가 있지만 보호할 수 있는 인원이 10명 이내로 한정돼 10대 가출자 보호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무리다. 이곳은 소규모 가정집 형태로 운영돼 정서적 안정을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마땅한 연계교육방안이 없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경찰청이 현재 파악하고 있는 가출 청소년은 연간 1만명선. 그러나 청소년 문제 전문가들은 신고되지 않은 가출까지 포함하면 1년에 10만명의 청소년이 거리에 나서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차원이든 민간차원이든 보호시설이 턱없이 모자라다는 것을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그나마 아동상담소나 민간보호시설은 가출 남학생 위주로 운영되고 있어 가출 여학생은 일시적인 피난처 조차 찾기 어렵다. 서울시립 동부아동상담소는 80여명을 수용할 수 있으나 수용자가 모두 남학생이다. 대한 성공회가 운영하는 서울 봉천동 「청소년 쉼터」는 가출소녀를 위한 시설이지만 수용인원이 5, 6명에 불과하다.
한국청소년개발원 이용교 복지환경실장은 『가출청소년들이 집을 나와 유흥업소로 가지않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며 『신촌 가리봉동 돈암동 등 유흥업소 밀집장소에 「청소년 쉼터」를 마련하면 제발로 찾아가는 청소년은 어쩔 수 없더라도 최소한 먹고 자기 위해 유흥업소로 내몰리는 청소년은 구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의 단속이 유흥업소 출입 통제보다는 미성년자의 고용을 막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난해말까지 10대들의 밀집지였던 서울 성북구 돈암동은 최근 10대 「삐끼」를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경찰의 단속이 강화되자 점차 취업이 가능한 금천구 가리봉동이나 광진구 화양동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10대 가출문제에 대한 고정관념의 탈피를 지적하는 소리도 있다. YMCA 이승정 청소년사업부장은 『청소년기의 특성상 가출욕구는 누구에게나 잠재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세대 조혜정 교수는 교육구조의 근본적인 개혁만이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입시위주의 교육틀에 10대 청소년을 무조건 가둬 두려 하지말고 그들의 다양성을 수용하는 교육틀을 갖추는 것이 시급합니다』<이진동 기자>이진동>
◎왜 가출하는가/‘애정없는 가정’ 35%/최근엔 ‘즐기기 위해’ 중산층 10대들도 급증
10대 가출은 이제 결손 가정이나 비행 청소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중산층 가정의 10대 가출도 일반화하고 있다. 그들은 왜 가출을 하는 것일까. 서울 YMCA의 「청소년 쉼터」가 지난해말 가출경험이 있는 학생 3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대화와 애정없는 가정환경」(34.8%) 「입시교육위주의 학교환경」(19.3%) 「향락·퇴폐적인 사회환경」(16.4%) 등이 주된 가출요인으로 드러났다.
또 일반학생 2,123명에게 「어떤 때 가출하고 싶은가」를 물었더니 「부모님이 무작정 야단칠 때」(34.9%)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할 때」(20.7%) 「집에서 내 존재를 알아주지 않고 무시할 때」(14%) 「지나친 보호와 간섭을 당할 때」(10%) 순으로 응답이 나왔다. 이 조사는 세대차이에서 비롯한 갈등이 생겼을 때 부모가 이해해 주지못할 경우 가출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헐렁한 바지를 엉덩이에 걸치고 길게 바닥으로 늘어 뜨리는 힙합바지를 둘러싼 부모와 자녀간의 마찰이 대표적인 경우다.
상습가출자인 L(17)군은 『어머니가 동생 앞에서 「넌 이미 망가졌다」고 야단칠 때 집을 나오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의 중학생 K(15)군은 『부모가 잔소리를 심하게 해 듣기싫어 집을 나간 적이 있다』며 『가출하면 일단 간섭하는 사람이 없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잖아요』라고 반문했다.
학교생활 때문에 가출하고 싶은 경우로는 「공부에 대한 부담감이 클 때」(25.6%), 「학교성적이 너무 나쁘게 나왔을 때」(16.3%) 순으로 나와 성적위주의 학교교육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가출의 한 원인이 되고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학교생활에 만족한다는 대답은 19.5%에 지나지 않았다.
이같은 조사결과는 대한성공회 「청소년 쉼터」가 지난해 12월 실시한 설문조사결과와도 통한다. 가출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는 응답이 49.7%에 달했고 가출동기로 「부모님이 무작정 야단칠 때」를 든 학생이 34%로 가장 많았다.
최근에는 가정이나 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는 가출 말고도 즐거움을 찾아 집을 떠나는 「추구형 가출」도 부쩍 늘고 있다. 취재팀이 롯데월드에서 만난 H(15·K중)양은 『남학생들과 놀고 싶을 때 집을 나갔다』며 『주유소에서 일한 돈으로 힙합바지 등 엄마가 사주기를 꺼리는 옷을 마음놓고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YMCA의 설문조사에서도 학생들은 가정·학교문제 외의 가출 이유로 「그냥 나가 놀고 싶을 때」(46.9%)를 우선으로 꼽았다.
사회 전반적인 향락풍조와 선정적 대중매체의 영향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되새기게 하는 대목이다.<이진동 기자>이진동>
◎‘힙합바지’가 갈등 새 불씨/“지저분하다” 계속되는 잔소리에 “남들 다 입는데 왜 이해 못하나”
10대 청소년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는 힙합패션이 부모와 자녀간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갈등이 심할 때는 자녀들의 가출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힙합(Hip―Hop)패션이란 미국의 흑인빈민가에서 시작된 것으로 바닥에 질질 끌리는 낡고 헐렁한 청바지에 밑창이 두터운 신발, 거꾸로 쓴 야구모자 등을 특징으로 한 10대 패션. 우리나라에서는 서태지나 김건모 등의 노래에 10대들이 열광하면서 그들의 힙합패션도 함께 인기를 누리게 됐다.
중3인 딸아이의 가출로 고통을 받고 있는 주부 K(39)씨는 『딸 아이가 하도 졸라 힙합인지 뭔지하는 바지를 사 줬지만 볼 때마다 짜증스러워 잔소리를 했다』며 『지금은 그 때문에 애가 가출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일산에 살고있는 K(40)씨의 경험담도 비슷하다. 『미국출장을 갔다 오던 길에 꽤 많은 돈을 주고 캘빈클라인 청바지를 사다 줬더니 아들녀석이 「이런 촌스런 것을 누가 입느냐」며 면박을 주더라고요. 화가나서 손찌검을 하려했더니 아들녀석이 「손만 대면 집을 나가 버릴 것」이라고 하는 바람에 힙합바지를 사 줄 수 밖에 없었어요』
가출경험이 있는 J(16·D여중 3년)양은 『힙합바지건 일자바지건 유명상표가 아닐 경우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는다』며 『부모님이 그런 저런 사정을 알지도 못하고 나만 이상하다며 혼내기만 해 집을 나왔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용돈을 벌고 있는 L(17·I여상 1년)양은 『유명메이커 바지 하나 사려면 10만원 정도가 든다』며 『옷값 등을 벌기위해 단란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가출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대한성공회 「청소년 쉼터」에서 보호를 받고 있는 가출소녀 K(15·Y여중 2년)양은 『힙합바지를 입고 바닥청소를 하려는 게 아니다』며 『남들이 다 입는 것을 입고 싶어하는 우리 마음을 이해해 달라』고 주장했다.
힙합바지를 두고 『단정치 못하다』는 비난이 잇따르자 바지 끝단을 말아올려 운동화 뒤에 압정으로 고정하는 「압정 패션」이 등장한 것도 10대들의 힙합집착을 엿보게 한다.<조재우 기자>조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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