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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출 10대의 ‘삐끼’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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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출 10대의 ‘삐끼’ 생활

입력
1997.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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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 딱지떼면 술집 차려야죠”/여자친구와 동거하며 낮 밤 바뀐 올빼미생활/술값의 10%가 수고비/“집에 갈 생각은 없다”10대 가출자인 L(18)군의 생활무대는 서울 금천구 가리봉동. 일대에서 「삐끼대장」으로 통하는 그의 하루는 낮과 밤이 완전히 뒤집혀 있다. 밤새 일하고 상오 9시께 잠자리에 들어 한나절 내내 잠을 잔다.

저녁 6시. 보증금 50만원, 월세 10만원짜리의 1.5평 남짓한 「벌집」방에서 눈을 뜨면 옆에 여자친구가 잠들어 있고 옷가지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그가 사는 벌집의 20개 남짓한 방에는 가출한 여자애들과 같이 사는 10대 「삐끼」가 여럿 있다. L군도 지난해 인근 단란주점에서 일하는 여자친구를 만나 같이 지내고 있다.

저녁 7시 L군은 100m정도 떨어진 H단란주점으로 출근한다. 손님을 맞기위한 청소가 우선 급하다. H단란주점은 방이 2개인 10평 규모의 작은 업소로 가출한 10대 아가씨 3명이 일하고 있다. 밤 10시께부터 그는 바빠진다. 술손님들이 단란주점가를 기웃거리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술집이 밀집해 있어 한눈을 팔면 다른 「삐끼」들이 손님을 채 간다. 이 일대의 「골든 아워」는 밤 12시∼새벽 1시. 「삐끼」의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것도 이때다.

L군은 30대 3명이 단란주점가 어귀에 들어서자 재빨리 옆으로 다가갔다. 『아, 그집은 과부촌이에요. 우리집으로 오시면 영계들이 줄 서 있어요』 이런 식으로 H단란주점으로 안내하는 손님이 하루 평균 3팀이다. 일대의 업소에서는 대개 미성년자들이 일을 하고 있어서 한팀만 들어오면 단속을 피해 문을 걸어 잠근다. 제발로 찾아 온 손님이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절대 문은 열리지 않는다. 바깥에 있는 「삐끼」들이 무전기나 전화로 연락하고 안내를 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

L군은 일대 단란주점과 룸카페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의 평균연령이 17세 정도로 19세만 되면 나이먹은 편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이곳 아가씨들은 거의 외박을 나가지 않아요. 나갔다가 걸리면 당장 업소 주인이 「윤락행위방지법」에 따라 철창신세를 지게 돼 가게를 말아먹게 되거든요. 물론 S, P 단란주점 같은 예외도 있긴 하지만요』

업소들은 보통 손님이 내는 술값의 10%를 「삐끼」에게 수고료로 준다. L군은 한달에 300만원 가까이를 번다. 다른 「삐끼」들이 70만∼100만원인데 비하면 「특A급」이다. 그는 이 생활을 통해 나름대로 세상을 알게 돼 돈버는 데는 자신이 있다고 자랑했다. 「시련」도 많다. 손님을 끌어오지 못하면 주인에게 얻어 터지고 의경에게 걸리면 즉심에 넘겨져 구류를 살아야 한다. 그러나 이 생활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L군은 95년 K중을 졸업한 뒤 바로 가출했다. 3형제중 막내인 그는 새 엄마와도 사이가 좋았고 다른 가정문제도 없었다. 다만 친구들과 어울려 자주 싸움질을 한 것이 문제가 돼 중학교때 4번이나 폭력혐의로 경찰서를 드나 들었고 소년원 신세까지 졌다. 늘 문제아였던 그는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바로 「삐끼」로 나섰다. 마음을 다잡으려고 오른손등에 새긴 하트문신도 지웠다.

1년 6개월동안 악착같이 일해 800만원을 모았다. 미성년자 딱지만 떨어지면 술집을 하나 차릴 작정이다. 가리봉동 밤거리의 네온사인은 그래서 그에게는 희망의 빛으로 깜빡거린다.<이진동 기자>

◎돌아온 가출소녀/중2때 외박추궁 겁나 가출/사창가서 붙잡혀 돌아왔지만 집안생활 너무나 지겹다

경기도 부천에 살고 있는 김은지(가명·16)양은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녔으면 3월에 고등학교 1학년이 된다. S중학교 2학년때인 지난해 1월 가출했다. 비싼 옷을 사 달라고 조르다가 혼난 적이 있었을 뿐 특별히 집을 나가야 할 이유는 없었다.

어느날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면서 정신없이 놀다가 집에 들어 갈 시간을 놓치고 친구집에서 잤다. 걱정에 잠긴 어머니 얼굴이 눈앞을 스치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화난 얼굴이 떠오르는 순간 무서웠다. 또 어차피 이렇게 됐으니 돈이나 벌어 마음대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피어 올랐다.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다.

집나온 지 며칠이 지나니 마땅히 있을 곳이 없었다. 「숙식제공, 월수 300만원이상, 지방 여성 환영」이라는 신문의 구인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전화번호가 서울 어디쯤일 것 같았다. 용기를 내 다이얼을 돌렸다. 30대 초반인 듯한 여자는 『옷파는 가게인데 우선 만나서 자세한 얘기를 하자』며 장소와 시간을 일러 줬다. 다방에서 만나자 마자 『몇 학년이냐』고 물어왔다. 『고등학교 1학년』이라는 대답은 거짓말이었지만 특별히 의심하는 기색은 없었다. 웃자란 170㎝의 키는 고3이라고 말해도 믿을 정도였다.

「가게」는 예상했던 대로 사창가였다. 비슷한 또래의 여자애들이 여러명 같이 살고 있었다. 『따뜻한 잠자리와 밥이 있다면 어딘들 어때』하는 생각이었다. 여자애들은 모두 『19세』 『20세』라고들 말했지만 차차 친해지면서 진짜 나이를 알게 됐다. 대부분 중·고등학교를 다니다가 가출한 아이들이었다. 화장하고 가발을 쓰면 누구나 20세 이상으로 보였고 주민등록증을 꺼내 보라는 손님이나 경찰은 없었다. 낮에는 잠자고 밤에는 손님을 받는 올빼미 생활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이어졌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한달정도 시간이 흐르자 아무렇지도 않았다. 첫달에 80만원 정도를 받았다. 큰 돈이었다. 차차 바깥 나들이도 할 수 있게 됐다. 누가 때리거나 괴롭히는 일도 없었다.

친구들에게 가끔 연락을 했지만 집에는 일절 연락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 목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아서였다. 두달쯤 지난 어느날 「가게」에서 낮잠을 자다가 「가출청소년 찾기 본부」 대원들의 눈에 띄었다. 친구에게 알려준 무선호출 번호를 어머니가 알아내 추적한 것이었다. 곧바로 인천의 기술학교에 들어가 직업훈련을 받다가 한달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지금부터 잘하면 된다』는 말만을 반복했다. 아버지는 어디 단란주점 쯤에서 일하다 온 것으로 알고 있다.

집에 돌아온 후 「가게」에는 한번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다시는 집을 나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수없이 해 본다. 그러나 아버지를 생각하면 집에서 지내는 하루하루가 지겹다.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왠지 아버지가 싫다. 그래도 어머니와 남동생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다.<조재우 기자>

◎돌아온 딸에게 보내는 아버지의 편지/틀에 박힌 생활에 가고픈 곳도 많았겠지/이제 속마음을 얘기하자

소연(가명)아!

모두가 잠든 깊은 밤이다. 네가 돌아온 뒤에도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구나. 자다 깨면 나도 모르게 네 방을 들여다 보곤 한다. 네 모습에서 가출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지만 왠지 전처럼 대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친구들 말을 통해 너의 가출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는 있었다. 틀에 박힌 생활이 답답했고 겨울바다 대학로 이대입구 이태원 신림동 롯데월드에 가보고 싶었다는 등등…. 가보고 싶은 곳이 의외로 많았더구나.

네가 집을 나간 날 웃음 띤 네 사진을 보면서 두번 다시 너를 보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에 떨었다. 무섭게 보였을지 모르는 아빠지만 그런 불행은 견딜 수가 없었단다. 눈을 감으면 애타게 아빠의 도움을 기다리는 너의 모습이, 우리 곁으로 오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졌단다.

발길 닿는 대로 비디오방이든 노래방이든 갈 만한 곳은 다 뒤졌고 뜬 눈으로 밤을 샌 뒤 경포대를 비롯해 네가 갔을 만한 곳에 사람을 보내고 엄마와 나는 롯데월드로 갔단다. 바닥에 질질 끌리는 바지를 입은 아이들,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긴 부츠에 미니스커트를 입은 아이들…. TV 연예프로에서나 보던 아이들이 거기엔 널렸더구나.

너를 찾아 길거리를 헤매다 지칠대로 지쳤을 때 네 전화가 왔다는 연락을 받고 정신없이 집으로 달려 왔다. 그러나 아빠는 너를 만나기가 두려웠다. 혼찌검을 내든가 눈물을 쏟아버릴 것 같아서였다. 엄마는 너를 붙들고 울다 지쳐 잠들었지만 아빠는 뜬눈으로 밤을 새며 지난 일을 되새겨 보았다. 결혼 7년만에 너를 낳았을 때 아빠는 세상 모든 것을 다 얻은 듯 했었고 건강하게 자라는 너는 우리의 행복이자 희망이었다. 온갖 정성을 다 했단다.

아빠는 무엇이든 불편없이 해주는 것이 너에 대한 사랑인 줄 았았다. 그게 오히려 네게 부담이었던 모양이다. 한번도 네 처지에서 생각하지 못했고 진솔한 대화를 나눠 보지 못했다는 자책감도 들었다.

아직 아빠는 걱정이 많다. 사노라면 더욱 어렵고 괴로운 일이 많을 텐데 그때마다 네 생각대로 행동해버린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롯데월드에서 본 아이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어떻게 하면 너와 속마음을 터놓고 얘기를 할 수 있을지…. 소연아! 서로 진실한 대화를 나누도록 같이 노력하자꾸나. 또 아무일 없이 집으로 돌아와 줘 너무너무 고맙다는 말도 꼭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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