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장쩌민(강택민)과 화궈펑(화국봉) 두 사람은 각자 전력면에서 닮은 점이 많다. 마오쩌둥(모택동)은 죽기전에 화를 후계자로 선정한 후 「당신이 일을 맡으면 나는 안심할 수 있다」(판사 아방심)라는 친필을 써주었다. 강도 89년 6월 덩샤오핑(등소평)으로부터 「중공 제3세대 영도집단의 핵심」이란 칭호와 함께 친서를 받았다.화는 모가 직접선택한 두명의 후계자를 모 자신이 차례로 제거한 후 세번째로 지명한 사람이다. 강 역시 등에 의해 세번째로 지명됐다. 화의 전임은 류샤오치(유소기)와 린피아오(림표)였고 강은 후야오방(호요방)과 자오쯔양(조자양)이었다. 닮은 점은 또 있다. 두 사람이 모두 지방출신이라는 점이다. 모두 천안문사태를 계기로 대권을 맡게 된 점도 같다. 화는 76년 저우언라이(주은래) 추도식으로 촉발된 시위사태후였고, 강은 89년 후야오방 추도식때의 사태가 계기였다. 두사람은 모를 제외하고는 중국역사상 당·정·군의 최고통수권을 한꺼번에 거머쥔 것도 닮은 점으로 빼놓을 수가 없다.
현재로서 두 사람이 다른 점이 있다면 자신을 후계자로 뽑아준 전임대권자가 죽고난 후 곧바로 정적의 도전을 받은 화에 비해 강은 비교적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인데 이 역시 속단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최고실력자 덩샤오핑이 숨을 거둔지 며칠도 안되어 6·4천안문사태의 정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광저우(광주)를 중심으로 한 몇몇 지역에서는 6·4사태의 역사적 재평가와 관련 피해자 복권 및 강경진압책임자의 처벌을 요구하는 대자보가 나붙기 시작했다고 한다. 6·4사태의 강경진압은 등의 방침이며 지시였기 때문에 미묘할 수 밖에 없다.
화는 모가 죽은 후 「두가지 무조건 복종」이란 원칙을 천명한바 있다. 모가 결정한 것이면 무조건 복종하고, 모가 한말이면 무조건 그대로 실행해야 한다는 지침이었다. 강이 화처럼 「두가지 무조건 복종」을 어떻게 소화할지도 알 수가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6·4사태의 고비(정리)만은 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광주사태의 교훈을 알고있는 우리이기에 남의 일 같지가 않다.<논설위원실에서>논설위원실에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