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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어디서 왔나(나라 살리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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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어디서 왔나(나라 살리자:2)

입력
1997.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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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적된 구조적 모순 분출 갈팡질팡 처방/사회전체 도덕성 상실도 한몫 “자성해야”나라의 위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한국일보 특별취재팀이 만난 사회지도급 인사들은 위기가 구조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고 진단한다. 잇따르고 있는 사태와 파동은 위기를 촉발시킨 하나의 도화선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온갖 사태와 파동은 왜 지금 이 시기에 잇따르고 있는 것인가. 사회지도급 인사들은 그 원인을 정치권력의 오만으로 지적한다. 동참을 유도하고 국민을 설득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동법 파동과 한보사태가 그 예이다.

그러나 정치권력이 오만하다 해서 배척하거나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나라를 죽이는 길이다. 질서의 틀안에서, 법치의 테두리내에서 나라부터 살려놓고 봐야 한다. 위기를 이용해 쪽박을 깨려하고, 초가삼간마저 태우려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 틈을 이용하려는 세력이 어김없이 있음을 국민은 잘 안다.

지금 국민은 어지럽다. 『국민 해 먹기도 힘들다』는 자조속에 국민은 정치를 혐오하고 정부를 불신한다. 기업은 투자의욕을 잃었고, 중소기업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진다. 백화점 외제코너에 바글거리는 일부 부유층을 제외한다면, 시장에도 가게에도 손님이 없다.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뜀박질 한다. 어느 한 군데 제대로 돌아가는 데가 없다. 잘 나가다 뒷걸음질 친 남미의 어떤 나라들로 착각이 들 정도다. 지금 이곳을 누가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한국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인가.

위기가 「구조적 요인」에서 비롯됐음을 사회지도급인사들은 한 목소리로 진단한다. 『과거의 무리한 개발정책 후유증』(김윤환 고려대 명예교수), 『오랫동안 누적된 문제가 한꺼번에 터진 것』(김관석 목사), 『광복이후 축적된 모순이 터져나온 것』(박경리 소설가), 『누적된 악의 고리가 비로소 드러난 것』(이호철 소설가)이라고 진단했다. 정치권력이 「누적된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 촉발시키는 우를 범했기 때문에 위기가 온 것이라는 분석이다.

오늘의 심각한 경제난에 대한 원인진단도 같은 맥락이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는 『지금의 경제난은 일찍부터 예견됐던 것』이며 『경제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제기됐으나 정책당국이 시의적절한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는 『잘못 짜여진 틀을 바꿀 생각은 하지않고, 신경제니 뭐니 하면서 그저 벌여만 놓다가 위기를 맞았다』고 지적했다. 고흥문 전 국회부의장은 『정치논리에 따라 성급하게 실시된 금융실명제가 말할 수 없는 주름살을 가져와 경제를 망쳤다』고도 분석했다. 과소비와 과도한 외화유출은 실명제의 후유증이라는 지적이다.

위기상황의 책임론에 이르면 정부의 몫은 무엇보다 크다. 정부에 대한 비판은 신랄하다. 정치권력과 정책당국자들이 위기에 대비하기는 커녕 「밥그릇 챙기기」와 무사안일로 오히려 증폭 조장시켰다는 지적이다. 『현재의 위기는 정치권력의 위선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노재봉 전 국무총리), 『여론조사와 인기에 연연해 화를 자초했다』(채문식 전 국회의장), 『국정수행의 무원칙성이 국정문란과 부패를 가중시켰다』(한승헌 변호사)고 분석했다.

사회의 내구성 취약과 도덕성의 상실도 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윤형원 한국교총회장은 『위기가 특정분야에서가 아니라 사회전체의 도덕성 해이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윤회장은 『개발과정에서 배태된 배금주의와 향락적 풍조가 시정되기는 커녕 오히려 만연해지고 있다』고 개탄한다.

「나라 살리자」를 외쳐야 할 만큼 지금의 위기상황은 총체적이다. 정부의 위기관리능력은 이미 논외의 대상이 됐다. 나라 안팎의 문제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다. 안보에서도 일관성이 없다. 정부보다 국민이 고정간첩 걱정을 먼저 하고있는 상황이다. 북한 잠수함이 제풀에 좌초되지 않았다면, 여전히 우리의 해안도시를 들락거리고 있을 터다. 사태와 파동이 터지면 정부당국자들은 책임이 없다고 발뺌을 하기에 바쁘다. 정치인들은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않고 그 틈을 이용해 설과 음해, 음모를 양산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마냥 집단무기력증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다. 이제 믿을 것은 국민의 힘밖에 없다. 한국일보가 만난 사회지도급 인사들은 국민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국민 스스로 비전을 제시하고, 극복의 의지를 북돋워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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