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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영주·차현숙씨 소설집 ‘연인…’‘나비…’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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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영주·차현숙씨 소설집 ‘연인…’‘나비…’ 발간

입력
1997.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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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는 무엇으로 사는가/집단·제도에 억눌린 굴절된 삶·내면방황 그려지금 우리 사회에서 30대 중반이라는 고개를 막 넘는 세대는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혹은 꿈이라 할 만한 것을 가지고는 있는지.

최근 각각 출간된 62년생 채영주, 63년생 차현숙씨의 소설집 「연인에게 생긴 일」, 「나비, 봄을 만나다」(문학동네간)에서 한번 그런 꿈의 모습 혹은 좌절된 꿈꾸기의 고통을 엿보자. 채씨는 88년 이후 「웃음」 등 다섯 권의 장편소설과 창작집 「가면 지우기」 등으로 다채롭고도 독특한 소설세계를 구축해 왔고, 차씨는 94년 등단한 후 30대 여성의 의식을 날카롭게 다룬 단편들과 장편 「블루 버터플라이」를 발표해 주목받고 있는 작가.

채씨 소설의 주인공들 중에는 흔히 사회적 일탈자로 불리는 유형의 인물들이 많다. 이런 인물들을 통해 집단·제도에 의한 억압과 인간 정체성의 위기를 드러내는 것은 그의 소설작업의 한 특징. 「저들은 자신들의 단단한 껍질이 엉터리 밀랍 한 겹에 불과하며 언제 어느 때 바스러지거나 흐물흐물 녹아내릴지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두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저들과 나의 차이점은 내가 그 점을 솔직히 인정하는 데 반해 저들은 결코 그러지 못한다는 데 있다. 저들은 언제나 두려움을 가리기 위해 무엇인가를 덕지덕지 바른다… 늙은 창부처럼」 자신의 입에 강제로 약을 집어넣는 의사를 보고 「백치세습」의 주인공인 광인은 이렇게 생각한다. 평범해 보이는 세계의 바깥은 허위이고, 광인의 의식은 오히려 그들을 비웃는다. 「더욱 나쁜 점은 그들이 그 두려움을 다른 사람에 대한 명령을 통해 잊고자 한다는 것이다」.

채씨는 끊임없이 이런 현실에서 벗어나기를 꿈꾼다. 어머니의 산소를 찾아가는 길에서 만난 비디오 대여점 소녀와 보내는 하룻밤에 함께 한 담배와 포도주가 잠깐의 도피가 되고(「담배와 포도주」) 이국에서 찾아낸 순수한 영혼들에서 위안을 얻기도 한다(「부디 린」). 『자율적 자아이기 위해 집단(제도)으로부터 철저히 떨어져 나와야 한다는 채씨의 선택은 이율배반적이지만 「웃음」이라는 소설적 장치로 그 일탈의 꿈을 추구하는 작가의 작업은 우리 소설의 중요한 성과이다』(문학평론가 류보선)

채씨에 비해 차씨의 현실 인식은 보다 직접적이다. 그가 늘 문제 삼는 현실은 바로 지금 우리 사회 30대 여성의 위기이다. 「나비」는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꾸는 꿈의 상징이다.

자신이 무슨 꿈을 꾸었던지조차 잊어버리고 속물로 살아가는 남편을 둔, 생활비에 쪼들리며 집안살림하고 애 보는 일을 「파업」하고 싶은 나.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평등을 위해 전 인생을 걸고 투쟁하는」 노동운동가 남편을 위해 먹고 살 돈을 벌어야 하는 친구 은희. 매일 전화통만 붙잡고 수다떨던 둘이 오랜만에 시내 한복판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난다. 서로 확인하는 것은 각자의 남편에 대한 절망과 이혼이라도 하고 싶은 욕구 사이의 갈등 뿐. 맥주로 목을 축이러 들어간 카페에서 그들 사이의 대화를 듣고는 『아르바이트라 생각하고 한번 들러』라는 주인 여자… 미칠 것 같은 세상이다.(「나비의 꿈, 1995」)

주인공은 서울역 대합실로 간다. 떠나고 싶다. 「서른 두살에 생전 처음으로 고아가 된 것 같은, 그런 절실한 감정에 부딪친다… 남편을 만나기 전에 내가 가졌던 삶에 대한 열정들을 되살려보기 위해 기억을 헤집었지만 이미 표백된 기억은 생생하게 달려오지 않는다」

여기서 차씨는 나비의 꿈을 꾼다. 「모든 것에서 놓여나서, 한번쯤 날고 싶다」는 꿈이다. 그 탈출 욕구가 어떻게, 성공적으로 감행될 지는 미지수인 채로 남아있지만 작가는 그 욕구를 부추기는 우리 사회의 젠더(성) 이데올로기를 우선 선명하게 까발기는 것으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나는 결혼한 여성의 존재가 어떻게 정립되어야 하는가 하는 데 관심이 있다. 그들의 존재 양식을 소설 속에 세우고 싶다』는 것이다.

참으로 수수께끼 같은 연령대가 바로 30대다.<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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