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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존 웨인과 브래드 피트가 공연?(우리문화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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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존 웨인과 브래드 피트가 공연?(우리문화 키워드)

입력
1997.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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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배우·가상현실 사이버그라운드 가수…/영화·음악 등 모든 분야서 문화영토 넓히는 ‘컴퓨터의 마술’죽은 제임스 딘이 나와 영화주연을 맡고, 존 웨인과 브래드 피트가 시공을 초월해 함께 연기한다? 이것은 현실로 다가왔다. 사이버의 세계는 이미 영화 「크로우」에서 죽은 브랜든 리를 되살렸다. 사람이 몸에 센서를 부착하고 연기를 하면, 컴퓨터 속의 가상인물이 똑같이 움직인다.

1971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내놓은 「태엽시계의 오렌지」. 공간의 문화적 개념으로 사이버가 처음 등장한 영화다. 그리고 정확하게 20년 후 브레트 레오나드는 영화 「론머 맨」에서 가상 현실을 시도했다. 비록 마네킹 같은 느낌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컴퓨터가 만든 가상 섹스는 문화의 충격이었다.

영상예술에서 사이버 테크놀로지는 이제 가상공간 뿐 아니라 가상인물까지 창조한다. 영화 속 가상배우의 등장은 3차원 입체 컴퓨터그래픽으로 창조해 낸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의 탄생이 그 가능성을 예고했다. 가상인물은 실제 배우와 다름없이 연기한다.

대개 SF물로 나타나는 사이버영화의 대부분은 컴퓨터가 지배하는 사회이다. 우울하고, 정보는 독점되며, 「토탈 리콜」 「네트」의 주인공처럼 인간의 정체성(신체와 의식)까지도 변형된다. 그것은 「블레이드 러너」나 「터미네이터」처럼 사이보그가 나타날 때 더욱 복잡해진다. 영화는 그러나 그것에 저항한다. 컴퓨터 문명, 즉 디스토피아를 파괴하고 휴머니즘으로 돌아온다.

사이버는 우리 대중문화 속에도 깊숙이 파고 들었다. CF에서도 사이버는 새로운 표현 전략이다. 서기 2020년, 첨단과 폐허가 공존하는 미래도시. 사랑하는 사이보그를 구출하러 영화배우 정우성이 달려간다. 막다른 유리벽, 정우성은 사랑의 패스워드 38317을 입력하고 그를 구출한다. 38317은 초콜릿 「LIEBE」가 된다. 이미지로 상품을 선택하는 신세대들에게 가상현실은 어쩌면 당연한 마케팅 전략이다.

사이버 스페이스는 음악의 새로운 유통 공간이기도 하다. 소리와 사진, 그리고 글 모두를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장점으로 기존의 음악생산 유통망을 이용하고 싶지않은 사람들은 사이버세계 속에서만 활동하는 음악인이 될 수 있다. 인터넷 속에는 이미 자신이 만든 음악을 파일로 올리고 이 파일을 다운 받아서 음악을 듣는 팬들과 이 속에서만 교류를 나누는 음악인들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PC통신망을 통해 소개되고 네티즌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던 황신혜 밴드, 언니네 이발관, 똘똘이 밴드 등이 있다. 네티즌들은 단순한 언더그라운드 가수들과 이들을 구분해 「사이버 그라운드」가수라 부른다.

음악과 컴퓨터가 결합되면서 음악 자체가 변하기도 한다. 사이버 스페이스속에서 음악은 「창작」의 개념보다 「편집」의 개념이 더 중요해진다. 90년대 우리 대중음악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댄스 뮤직은 사이버 공간이 탄생시킨 대표적인 얼굴이다.<이대현 기자>

◎사이버스타/컴퓨터가 낳은 새 인물·새 직업 PC통신 동호회장 웹마스터…/플레이보이 모델 이승희도 한 사례

사이버스페이스라는 신세계는 새로운 직업과 인물을 낳는다. 사이버 세계 역시 사람에 의해 움직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새로운 눈과 귀를 가져야 한다. 현실 세계와는 다른 무엇을 꿈꾸는 사이버 주민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다.

인터넷이 붐을 일으키면서 가장 비중있게 등장한 직업군 중 하나가 「웹 마스터(Web Master)」. 웹사이트 또는 홈페이지를 만들고 운영하는 사람이다. 이들이 중요한 이유는 웹에서는 누가 홈페이지를 가장 아름답고 재미있게 만드느냐에 따라 웹상에서의 권력이 재편되기 때문이다. 거대한 기업이나 언론, 한편으로는 아무 가진 것 없는 개인 모두 웹에서는 홈페이지라는 평등한 형식으로 만난다. 충실한 홈페이지를 누가 만드느냐에 따라 이들의 영향력은 현실과는 정반대로 나타날 수 있다. 이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 바로 웹 마스터들인 것이다.

컴퓨터 통신 속의 각종 동호회장들도 사이버 월드가 낳은 새로운 「권력자」들이다. 통신사 별로 수십개에 이르는 동호회 회원들은 통신사별 가입자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또 가장 열성적인 통신인들이기도 하다. 때문에 통신사에서는 동호회를 잘 운영해 세를 잘 늘려가는 동호회장을 서로 스카우트하기도 한다.

컴퓨터 게임 매니저 역시 사이버 월드를 무대로 뛰는 만능인이다. 이들은 게임 시나리오 작가, 캐릭터 디자이너, 소프트웨어 개발자 등의 능력을 잘 조정해 한 편의 작품을 탄생시킨다. 영화에서의 감독과 같은 역할이다.

사이버 세계에서 탄생되는 스타들은 대부분 현실 세계의 권위에 과감히 도전하거나, 현세에서 만족할 수 없는 욕구를 해소시켜 주는 사람들이다. 누드사진을 계속 인터넷에 올려 결국 플레이보이사의 전속 모델이 된 재미교포 이승희, 「창녀론」 등 여성에 대한 심한 비하로 유명해진 김완섭과 반대로 극단적인 페미니즘을 주장한 신정모라, 주부의 성의식을 솔직하게 드러낸 양은영 등은 바로 사이버 세계가 창출한 인물들이다.<이윤정 기자>

◎사이버문학/좁은 의미의 PC통신 문학 ‘퇴마록’이 대표적/그러나 “매체의 차이일뿐 내용적으론 없다” 반론도

사이버문학에 대한 논의가 최근 활발하다. 사이버문학이 무엇인지, 과연 있기나 한 것인지 하는 논의들이다.

좁은 의미로 사이버문학이라 할 때는 통상 PC통신문학을 가리킨다. 통신망 내 문학 관련 난이나 동호회, 게시판 등에 올려지는 글이다. 익명성이라는 PC통신의 특성상 전문 작가가 아니더라도 ID만 있으면 누구나 자신의 글을 올려 독자들을 확보할 수 있다.

대표적 경우가 「퇴마록」. 엔지니어 출신인 작가 이우혁씨는 93년 여름부터 하이텔문학관 공포/SF난에 인간세계를 잠식하는 악령을 쫓는 퇴마사들의 이야기를 연재했다. 심령술과 초자연현상 등에 대한 필자의 해박한 지식에 바탕한 재미를 갖춘 「퇴마록」은 현재까지 12권의 책으로 출간돼 300만부 가까이 팔려나갔고 영화로도 만들어질 예정. 일부에서는 작가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독자들의 즉각적 반응, 내용면에서의 신비주의적 분위기 등을 감안할 때 「퇴마록」이 사이버문학의 한 전형이라고도 한다.

92년 5월부터 복거일씨가 하이텔문학관에 「파란 달 아래」를 연재한 후부터는 기성작가들이 PC통신에 잇달아 「등단」했다. 하이텔문학관에는 주인석 한수산 이순원 박상우 이상문 윤대녕 이승우씨가 장편 연재를 계속했고, 이혜경 함정임 송경아씨 등 여성작가들이 연재한 단편 모음집도 출간됐다.

지난해 말에는 「사이버문학의 도전」을 기치로 내걸고 전문 계간지를 표방한 「버전업」이 창간됐다. 이들은 본격 사이버문학의 요건으로 펜을 키보드로, 문자언어를 전자언어로, 문자텍스트를 디지털 텍스트로 대체할 것을 주창한다. 그 근거는 크게 두가지. 사이버문학의 실질적 글쓰기 방식은 하이퍼텍스트, 이른바 비연속적 글쓰기에 기초하므로 텍스트 공간의 이동이 자유로우며 독자들의 참여 하에 계속적인 텍스트의 재창조가 가능한 전혀 새로운 글쓰기라는 것이다. 또 내용상으로는 기존의 본격문학이 담아내지 못하는 추리, SF, 가상현실 등 대중적 모티브의 도입이 가능한 것도 장점으로 든다.

그러나 현단계 한국문학에서는 종이책이냐, 컴퓨터 모니터냐 하는 매체의 차이에 따른 구분이라면 모르나 『내용적으로 사이버문학은 없다』는 주장도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하종오 기자>

◎전문가 기고/홍성태 서울대 강사·「사이버 공간,사이버 문화」 저자/문화적으로 애매한 경제적으론 분명한 그 ‘남용과 오용’

사이버문화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귀에 익숙치않은, 그러나 근래 들어 곳곳에서 심심찮게 사용되는 사이버라는 용어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해 먼저 답할 필요가 있다.

사이버란 용어는 그 자체로서는 아무 뜻도 없는 공허한 기표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이 용어는 사이버네틱스라는 더욱 익숙치 않은 용어의 자의적인 줄임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차대전이 끝난지 얼마 안된 시점에 사이버네틱스라는 새로운 학문분과를 창시한 노버트 위너의 설명에 따르면 그 핵심원리는 정보의 소통을 모든 것의 중심에 둔다는 점에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인간과 동물과 기계는 정보의 소통을 통해 개체의 항상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이버문화와 관련하여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인간과 기계의 정보적 동등성이다. 이 점은 과학기술의 차원에서는 인공지능의 추구로, 문화적 차원에서는 사이보그라는 신종 인간 혹은 기계의 탄생을 둘러싼 상상력의 만개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사이버문화란 결코 현존하지 않는, 그리고 어쩌면 결코 현존할 수 없는 문화를 가리킨다. 왜냐하면 인간의 기계적 재현이라는 결코 쉽게 해결될 수 없는, 그리고 분명히 아직까지는 결코 실현되지 못한 문제가 여기에 개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말해보자면, 현재 운위되는 사이버 문화란 사이버네틱스가 낳은 상상력과 이미지를 둘러싸고 행해지는 문화상품의 생산과 소비일 뿐이라고 할 수 있다. 물질적으로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큰 사용가치를 지니는 것은 고대의 신화나 현대의 최첨단 기술문화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오늘날 사이버 문화의 사용가치는 컴퓨터 기술 및 산업의 급속한 발전에서 그 위력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이 점에서 사이버문화는 컴퓨터의 개발과 이용에서 비롯되는 여러가지 새로운 문화적 현상이라는 물질적 근거를 가진다. 그러나 실제 내용으로 보자면 사이버 문화는 신화적 상상력을 기술적으로 부활시킴으로써 컴퓨터 산업의 발전을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한다. 이같은 맥락에서 사이버라는 용어는 문화적으로 더욱 더 애매하게, 경제적으로 더욱 더 분명하게 오용·남용되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문제는 이러한 오·남용 속에서 인간 자체의 정체성이 더욱 더 급속하게 해체된다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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