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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험대에 오른 남북한/이부영 민주당 부총재(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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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험대에 오른 남북한/이부영 민주당 부총재(아침을 열며)

입력
1997.0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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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3년 앞둔 세기말의 한반도에는 요즘 정신차릴 겨를이 없을 정도로 극심한 변화의 소용돌이가 일고 있다.황장엽 북한노동당 비서의 망명사태는 그 의외성에서 뿐만 아니라 그 사건이 미칠 파장 때문에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대만 핵폐기물의 북한 반입 저지 교섭차 필자등 우리 국회대표단이 워싱턴에서 만난 미국 국무부 찰스 카트만 동아태부차관보를 비롯한 많은 북한문제 전문가들도 그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황비서가 김일성의 인척이며 김일성대학 총장을 지낸 북한의 최고 지성이며 주체사상의 수립자이므로 그의 망명 기도는 놀라움을 자아낼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황비서의 망명 동기가 그의 말대로 「남과 북의 화해와 통일」에 기여하고 싶다는 대승적 차원인지, 자신의 개혁개방노선이 김정일로부터 배척당해 숙청의 위험을 피하기 위한 개인적 차원인지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다만 우리는 현재 북한의 상황이 김정일의 폐쇄독재로 기아에 허덕이고 있으며, 언제 전쟁으로 비화할 지 알 수 없는 위험한 상태에 처해 있다는 그의 발언에 주목해야 한다. 한마디로 황비서의 망명은 북의 상황판에 켜진 빨간불이다. 따라서 현재의 사태는 우리로 하여금 민족의 화해와 평화라는 대의에 입각한 성숙한 대처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황비서의 망명사태 이후 우리 사회가 보이고 있는 반응은 많은 문제를 드러낸다. 『권력 깊숙한 곳에 북측 사람이 박혀 있다』 『남한에 북의 고정간첩 5만명이 암약하고 있다』 『그날 아침에 열린 여권 핵심기관의 회의내용이 상세히 기록된 서류가 김정일 책상위에 놓인 것을 보았다』는 황비서의 발언이 진위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채, 얼굴없는 「정부고위 관계자들」의 이름으로 유포되고 있다.

정부는 먼저 이 발언의 진위에 대해 철저히 조사를 벌여, 근거없는 말이라면 발설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고, 사실이라면 안보상의 중대한 허점을 노출한 책임자들의 문책과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한편 며칠전 집권 여당대표는 국회대표연설을 통해 자신이 주도적으로 성안했던, 남북 쌍방이 상대방을 동반자로 규정한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의 유효성을 스스로 부정하고, 남북간 「대등한 관계」라는 전제를 근본적으로 수정한 「한국식 통일방식」을 주장했다.

이는 사실상 흡수통일론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물론 흡수통일론도 우리 사회안에 존재하는 엄연한 한 흐름이지만, 황비서 망명사건으로 극도의 혼란상태에 빠져있는 북한측을 집권당 대표가 앞장서서 자극할 필요가 과연 있었는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지난날에도 숱한 권력형비리 사건을 겪어왔지만 이 시기에 겪는 한보사건은 우리를 역사의 시험대 위에 올려세우고 있다. 남과 북에서 일어난 한보사건과 황비서 망명사건은 단순한 충격을 넘어서 50년이상의 냉전시대 동안 굳어져온 남과 북의 권력질서의 재편을 예고하는 조짐으로까지 받아들여진다.

북쪽은 심각한 폐쇄독재와 그에 따른 경제난으로, 남쪽은 부패한 정치권력구조로 인해, 권력이 각각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남쪽의 권력엘리트 집단이 한보의혹과 같은 사건 앞에서 자신을 정화하고 도덕성을 회복할 능력을 갖고 있느냐 하는 문제는 결국 그들이 통일시대를 관리하고 이끌어나갈 자격과 능력이 있느냐를 가늠할 시금석이 될 것이다. 그러한 자격과 능력은 냉전시대의 철 지난 외투를 걸쳐 입고 있는 한 결코 주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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