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태생지,80년대/그곳을 거친자의 사랑은…소설가 전경린(35)의 활약이 눈부시다. 95년 문단에 데뷔한 「신인」이면서도 지난해 한국일보 문학상을 받은데 이어, 최근 첫 장편소설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로 제2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했다. 잇달아 받은 큰 상의 무게만큼 당당하고 빠르게 문단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아무 곳…」(문학동네간)은 80년대에 청춘을 고스란히 보낸 젊은이들의 슬픈 사랑을 그렸다.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금방 머리에 떠올릴 수 있는 운동권과 그 이후의 이야기이다.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아름다운 여자 김이나, 투쟁의 일념으로 현장에 뛰어들었던 그의 연인 태인, 직장 부하인 이나에게 사랑을 느끼고 헌신적으로 보살피는 중년 남자 서현 등 세 남녀가 주인공이다.
이나는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자기 희생과 파괴를 반복하지만, 투쟁을 위해 순수한 사랑에 빗장을 걸고 열쇠마저 잃어버린 태인은 늘 주변을 겉돈다. 아내를 잃고 남성의 기능까지 상실했던 서현은 이나에게서 새봄을 느끼지만 마음을 얻지는 못한다.
소설은 사랑의 완성으로 귀결되지 않고 철저하게 세사람을 극한 상황에 몰고간 채 막을 내린다. 이나는 서현의 사랑과 그가 제공하는 안락함을 버린 채 꿈을 쫓아 떠나고, 태인은 뒤늦게 이나에 대한 거친 사랑을 느끼며 광인이 되어간다. 냉전이 종식되면서 절정에 이르는 운동권 지식인들의 고뇌와 방황이 소설의 전면에 흐른다. 더러는 현실에 타협하고, 더러는 타협이 두려워 자기 속으로만 침잠한다. 전경린은 이들의 현재를 따스하고 균형있는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80년대 운동권 소재의 소설이 격한 울분을 토로하고, 부분적인 사실에 집착한 경우가 많았는데 「아무 곳…」에서는 많이 정리된 듯하다.
전경린은 『지금까지 모든 세대가 나름대로 운명적 상황을 겪은 것처럼, 80년대에 20대를 보낸 것은 나의 개인적인 운명이다. 그 운명의 후유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사랑을 쓰려했다. 작가에게 태생지가 있다면, 나에겐 80년대이다. 이 소설을 끝맺음으로써 나는 태생지에 어느 정도 빚갚음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권오현 기자>권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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