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 데이가 지나고 화이트 데이(3월14일)를 기다리는 시기다. 이번에는 남자들이 준비해야 된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 살면서 미국과는 다른 발렌타인 데이, 화이트 데이 풍습때문에 곤란할 때가 있다.한국사람들이 아는지 모르지만 미국에는 화이트 데이가 없다. 그렇다고 이 날을 한국의 과자업체들이 만든 것도 아니다. 내가 알기로는 화이트 데이 풍습은 일본에서 수입된 것이다.
미국에서는 발렌타인 데이만 보낸다. 초등학교 시절 이 날은 너무나 재미있는 날이었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이 며칠전부터 값싸면서도 멋진 카드를 사 사인을 하고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이 카드를 「발렌타인 카드」라 부른다. 그 날이 되면 학교마다 학생들이 서로 카드를 주고받는 시간을 갖는다.
가장 재미있는 것은 카드의 흐름을 통해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혹은 짝사랑하는지, 그리고 누가 좋은 친구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도 그랬다. 그냥 보통의 카드가 있는가 하면 가장 친한 친구를 위해 정성들여 마련한 카드가 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담아 보내는 카드도 따로 있었다. 그래서 카드 주고받기가 끝나고 나면 친구들 사이에 싸움도 벌어지고 뜻하지 않은 새 친구를 사귀게 된 일도 많이 있었다.
어른이 된 뒤 발렌타인 데이는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이 날은 남녀구별없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카드를 전하거나 식사대접을 하고 꽃 속옷 초콜릿 등 선물을 주는 날이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여기서는 발렌타인 데이의 의미가 조금 다르다는 걸 몰랐다. 아내와 만난 뒤 첫 발렌타인 데이 때의 일이다. 데이트를 하면서 초콜릿을 선물로 받고 나도 주었다. 그런데 아내는 이상하다는듯 『나한테 초콜릿을 왜 주냐?』고 물었다. 나의 대답은 당연했다. 『발렌타인 데이니까 주었지!』. 그러자 아내는 『그렇지만 화이트 데이에도 줘야 돼!』라고 말했다.
화이트 데이가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그날도 선물을 주는 날이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화이트 데이가 되었을 때 아내에게 초콜릿을 주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물었다. 아내는 『화이트 데이는 여자만 받는 날이잖아』라고 당연한듯 말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흠, 한국에서는 여자들이 대단한가 보다. 받기는 두번이나 받고 남자한테는 한번만 주니까』
이제는 잘 안다. 한국에서는 발렌타인 데이엔 남자들이 받고, 화이트 데이에는 여자들이 받는다는 것을. 그래도 미국에서 몸에 밴 풍습 때문에 곤란하다. 발렌타인 데이에 집사람한테 선물을 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다. 안주면 나의 마음이 불안하다. 이젠 집사람도 주기를 기대하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우리만의 풍습이 생겼다. 나는 발렌타인 데이에만 선물을 받지만 집사람은 두번 다 선물을 챙긴다. 우리 집에선 발렌타인 데이와 화이트 데이를 그렇게 보낸다. 언젠가는 평등해지겠지….<미국인>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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