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예술계의 주목할 만한 변화중에는 전업작가의 등장을 우선 꼽을 수 있다. 연극, 미술, 문학 뿐 아니라 음악에서도 이런 기운이 충만하게 내재돼 있다. 40대가 주축을 이루는 이 운동의 핵심요지는 한마디로 생존권 확보이다. 예술인력에 관한 한 수요공급의 원리가 무시된 채 양산되다보니 아마추어와 프로가 한데 뒤섞인 채 옥석을 가리지 못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인식이 공감대를 형성하기 때문이다.전문성이란 면에서 음악은 타 장르와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비전공자가 연주회를 통해 입신하기에는 기술적 어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드시 이런 것이 옳은 것은 아니고 오히려 울타리를 쳐놓은 듯한 학력주의가 철저하게 타파되어야 예술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모든 장르에서 이미 한계에 부딪친 교수·강사직을 넘보기보다 전업작가를 선언하는 추세는 올바른 방향을 잡아가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공공연한 비밀이 된 교수 임용 비리 뿐 아니라 양산되는 예술인력 공급의 조절 기능에 대한 기대값도 있다. 교육자와 예술가가 분리되지않은 우리 사회의 허상적 구조는 급속히 깨어질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새 살이 돋아날 것이다. 틀을 깨는 데는 힘이 필요하다. 조직이 필요하고 경영기법이 도입되어야 한다. 생존권 확보 뿐만 아니라 전업작가에 의해 예술사회가 변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예술을 전공하는 것과 애호하는 것의 차이가 국민들 사이에 인식돼야 한다. 시골동네의 작은 콩쿠르에만 입상해도 천재가 난 것으로 여기는 풍토가 개선되어야 겠다.
미국을 비롯, 유럽 이탈리아에서도 음악전공자는 크게 줄고 있다. 우리 성악도들이 이탈리아 콩쿠르를 석권하는 근자의 소식은 기량 향상이란 면에서는 기쁘지만 종주국에서의 예술가 격감 현상과 무관치않음을 타산지석으로 여겨야 한다. 이제 우리가 그 변화의 진입로에 들어섰다. 전업작가 선언은 예술의 프로화 선언이자 21세기 우리 예술의 지향점이어서 신선하기 이를 데 없다.<탁계석 음악평론가>탁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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