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비리와 구조적 모순/염재호 고려대 교수·행정학(한국논단)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비리와 구조적 모순/염재호 고려대 교수·행정학(한국논단)

입력
1997.02.20 00:00
0 0

◎한보사태 문제핵심은 개인차원 비리 아닌 시장논리 왜곡시키는 정치논리 개입 때문순박한 국민의 눈으로 보더라도 요즘 그들보다 더 순진하거나 아니면 더 어리석은 세 그룹의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전직 은행장들이 비리로 구속된 걸 보고도 자신들도 며칠 안가서 몇 억원씩을 받고 구속된 은행장들이다. 다른 하나는 여당의 정치공세라고 하면서도 결국은 돈 받은 것을 시인한 야당 지도자 측근이다. 마지막은 반복되는 측근의 비리에 안타까움과 당혹감을 금치 못한다고 하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여권의 사람들이다.

왜 대출청탁의 대가로 뇌물을 받으면 죄가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또 돈을 받았을까. 사소한 약점에도 정치공세를 받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왜 야당 간부가 뇌물을 받았을까. 강력하게 개혁을 추진한다고 하면서도 대통령은 왜 권력핵심 주변의 비리는 감지하지 못했을까.

한보사태로 올해의 경제위기가 더욱 심각하게 느껴진다. 검찰은 몇 핵심적 관련인사의 구속으로 수사를 종결하려 한다. 언론도 「떡값인가 아닌가」 「대통령의 가신과 인척이 관계가 있는가 아닌가」 등 개인적 차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민도 개혁과 도덕성을 강조한 현정부에 배신감을 느낀다고만 한다.

한보사태는 개인적 비리의 문제만인가? 또는 김영삼정부의 도덕성의 문제만인가? 아니면 정태수 총회장의 개인적인 기업윤리의 문제만인가? 여기에서 우리는 「왜 한보의 경우가 행정비리가 아니고 정치비리로 가닥이 풀리고 있는가」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지난 정권에서 수서사건으로 도덕성이 문제시되었던 기업이 또 다시 정부의 지원하에 5조원에 달하는 대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고도성장기에 시장의 논리를 왜곡시킨 정치의 논리가 아직도 건재하다는 데에 있다.

우리 경제의 심각한 문제의 뿌리는 고도성장기에 국가경제를 이른 시일에 부흥시키기 위해 재벌 중심으로 자본을 집중시켜 왔다는 데 있다. 정부는 자본을 집중시켜 산업화 및 수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부실기업 인수, 공기업 민영화, 관급 공사 등으로 재벌을 중심으로 자본은 집중되어 갔고, 이 과정에 기업은 소위 지대 또는 렌트(Rent)라고 하는 잉여이익을 확보하게 되었다. 즉 정부는 정책에 순응하는 대가로 이들 기업이 순수한 기업활동에서 얻은 이익보다 더 많은 잉여이익을 보장해 주었다. 이 과정에 기업들은 시장의 논리보다는 정치 논리에 길들여져 왔다.

신흥재벌을 꿈꾸는 많은 기업들은 기존의 재벌보다도 더욱 무모하게 정치논리에 가세하게 된다. 아직도 지대를 얻기위한 제도적 터전이 많다고 보는 것이다. 업종 전문화, 특정 산업에의 신규진입 규제, 공기업 민영화, 각종 인허가 등에서 정부의 시장개입은 특정 기업에 엄청난 지대를 제공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아직도 정당정치가 발전되지 못해서 비민주적 후보선출과정, 보스 중심의 정당운영, 정책논의의 부재, 지역감정을 이용한 정치동원 등으로 집권적인 정치권력에 매혹되고 있다. 따라서 야심있는 정치가는 정치권력을 얻기위해 종종 사탄과의 타협도 불사하게 된다. 결국 기업의 잉여이익 추구와 집권화한 정치권력의 정치재원 확보의지가 일치되면 시장의 효율성은 여지없이 붕괴되기 마련이다. 즉 경제위기의 뿌리는 정치적 논리의 텃밭에서 잘 자라게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12월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의 문제보다도 시장질서가 정치 논리에 의해 왜곡되는 구조적 문제를 다음 정권에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보다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건전한 정당정치의 발전, 시장질서의 회복, 지대추구 행위의 봉쇄, 잉여이익의 사회적 환원 등에 대해 다양한 제도적 장치와 민주적 절차들이 다음 정권에서 마련되도록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정치가나 관료의 도덕과 윤리를 강조해도 비리는 일상화하고, 결국 국민은 TV코미디프로를 틀어놓고 옆에서 『공부하라』고 윽박지르는 어리석은 부모 꼴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