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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앞에 선 인간’/죽음의 창에 비친 서구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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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앞에 선 인간’/죽음의 창에 비친 서구문명

입력
1997.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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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역사가 아리에스,매장풍습 시대별 변천과정 추적시대상을 반영하는 매장풍습은 역사와 문화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 24일께 동문선에서 출간될 「죽음앞에 선 인간」(전 2권)은 죽음의 이미지를 통해 서구문명의 변천과정을 이색적으로 조명한다. 중세부터 현대까지 묘지, 조각, 교회의 스테인글라스, 판화, 풍속화 등에 나타난 죽음의 흔적을 계통적으로 추적한다. 지은이는 84년에 타계한 프랑스의 역사가 필립 아리에스.

저자의 시각은 『인간이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일까』 하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죽은 자들을 매장하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호칭에 걸맞게 묘지의 변천과정을 교회를 중심으로 설명해 나간다. 시외곽에 자리잡고 있는 로마와 폼페이의 묘지는 사자와 생자의 분리를 상징한다. 그러나 무덤은 교회 안으로 파고 들어 벌집모양이나 카타콤베(지하묘지)를 형성, 「묘지 없는 교회, 교회없는 묘지」는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었다. 묘지를 자세히 살펴보면 기독교는 무덤의 방향이 예루살렘을, 이슬람교도는 무덤의 방향이 메카를 향하고 있는 특징이 발견된다.

중세의 묘지는 연인들이 서로의 약속을 주고 받는 데이트장소였으며, 미사가 끝난후 서로 만남의 기회를 갖게 되는 공공장소 역할을 했다. 묘비의 명문도 시대에 따라 바뀌었다. 11세기의 묘비명은 「여기 수도사 아르두앵이 잠들다」로 나이나 연월일도 기입되어 있지 않지만 17세기에는 「성 로자리오 신도회에 1,000프랑을 남기다」로 바뀐다. 고인을 기리거나 기념하는 것이 아닌 증여나 기부의 내용을 담은 유서의 성격을 띠었다. 묘비에 새겨진 횡와상에는 고인의 신분이 드러난다. 국왕은 왕홀을, 주교는 주교지팡이를, 기사는 두손으로 검을 잡고 있다. 14세기에는 여성의 묘비도 출현한다.

19세기에는 죽은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속옷을 입고 있거나 일요일 또는 결혼식 때 입는 정장차림을 하고 침대에 누워있는 형상이 묘비에 새겨진다.

묘비와 십자가의 모양도 다양하게 변했다. 16세기에는 장이나 심장의 모양을 조각한 묘비가 등장하기도 했다. 지옥의 확장, 지옥과 천국의 관계를 나타내는 목판화, 연옥의 발견은 저승의 공간 재배치를 요하는 일대 사건이었다. 16, 17세기 사람들은 반지나 브로치 혹은 펜던트 등의 형태로 죽음의 표식을 몸에 지니고 다녔으며 장례용 보석류를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따라서 죽은 사람의 얼굴은 흔한 장식품으로 초기의 회중시계에 조각되거나 혹은 모자에 장식되기도 했다.

19세기초 범죄자를 공개처형하고 동시에 그 유체를 모르그(시체공시장)에 전시하는 것은 재미나는 볼거리가 됐다. 처형장을 파리의 시민들은 마치 대로를 산책하는 기분으로 찾아다녔다. 1815년에는 묘비가 어린이의 수예품에도 나타난다. 미국의 사라 굴드의 학습과제인 수예품에는 오빠와 언니의 이름이 새겨진 묘비가 발견되는데 그후 가족이 죽을 때마다 이름이 추가되었다. 유선자 옮김<여동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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