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정치자금 파헤치기 외면/몸통 못찾고 깃털만 건드린 꼴검찰이 19일 한보그룹 특혜대출에 얽힌 외압의 실체에 접근하지 못한 채 수사를 마무리함에 따라 땜질수사라는 비난과 함께 재수사의 요구가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검 중수부는 이날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한보그룹에 대한 5조원의 대출을 가능케 했던 가장 큰 물줄기는 국가정책이라고 밝혔다. 당진제철소 건설사업은 국가 기간산업을 키우려는 정부 정책에 따라 결정된 것이어서 외압의 큰 작용 없이도 은행의 대출지원이 이뤄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정치권 실세와 은행장들이 「로비의 귀재」인 정태수 총회장의 뇌물공세에 말려들어 돈줄기의 흐름을 좀 더 원활하게 해주는 「작은 역할」을 한 대가로 뇌물을 챙겼을 뿐이라는 게 검찰 설명의 요지이다.
하지만 이같은 설명은 91년 수서사건 당시 부패기업으로 낙인됐던 한보그룹이 현정부 출범후 천문학적인 돈을 끌어들일 수 있던 근인에 대한 해답으로는 궁색하기 짝이 없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국민들은 검찰의 설명이 의혹을 해소하기는 커녕 외압의 실체를 밝혀내지 못한데 대한 자기변명이자 「덮어두기수사」의 답습이라는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검찰은 신한국당 홍인길·황병태 의원 등 이른바 「대통령의 수족」 2명을 자금흐름의 지류에서 대출압력을 행사한 최거물급으로 꼽았다. 과연 이들이 배후 세력의 전부일까.
홍의원이 스스로 「깃털」이라고 표현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보이지 않는 큰 손의 작용없이는 5조원의 대출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검찰은 아예 이 실체를 건드리려는 노력도 없이 칼날을 거둠으로써 의혹을 봉합하기에 급급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대출과정에 국가정책이 작용했다는 검찰 발표를 수용하더라도 그 정책을 주무른 관계 실력자들의 입김이 전혀 개입되지 않았다는 점도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김우석 전 내무부장관의 뇌물비리가 드러나긴 했지만 대출과는 무관한 건설수주 청탁대가였다.
검찰은 수사말미에 박재윤 전 통산부장관, 한이헌·이석채 전·현 청와대 경제수석을 극비리에 조사함으로써 최소한의 모양새를 갖추려 했지만 『관과 청와대는 무관하다』는 해명성 차원 이상은 아니었다는 데서 수사의 한계를 드러낸 셈이다.
검찰이 한보그룹의 대선자금 지원여부나 정치자금 제공의혹에 대해서는 애써 칼을 빼지않은 점도 의혹을 부풀리는 요인이다.
정치인들에 대한 정치자금제공은 범죄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검찰의 입장이지만 한보의 자금공세가 대출비리를 키운 토양이었다면 철저히 파헤쳐 단죄해야 한다는 것이 여론이다.
『더 이상 배후는 없다』는 91년 수서사건 수사결과를 95년 노태우비자금 사건때 스스로 뒤집었던 전철을 다시 밟을 소지가 높다는 게 이번 수사결과를 지켜본 많은 사람들의 한결같은 우려이다.<김승일 기자>김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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