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철강 비리사태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좌절은 크다. 분노 또한 높다. 외압의 정체가 전혀 규명되지 않아 국민의 의혹은 치솟기만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인데 한승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은 『정부는 민간자율시대를 맞아 금융기관의 대출활동을 일일이 파악하거나 관여하지 않는다』고 말해 한보사태에 정부가 책임이 없다는 것을 시사했다. 한경제부총리의 이 발언은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면할 생각이 없으며 정책판단에서 책임이 있음을 자인한다』고 밝힌 이수성 국무총리의 정부책임론에 배치되는 것이다.부총리겸 재정경제원장관이 총리와는 격이 다르다 해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기획·조정·집행·감독 등 총체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자리다. 경제정책에 관한한 총리보다 권한과 책임이 더 크다. 대통령의 위임을 받아 국가경제를 이끌어가야 하는 최고 책임자다. 이러한 요직에 있는 한경제부총리가 김영삼 정권의 위기라고 할 만한 정치·경제·사회 등 총체적인 파문과 부작용을 몰아오고 있는 한보비리 사태에 「민간자율시대」 운운하며 여전히 발뺌하는 자세를 보인데 대해 지극히 실망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정부관계부처 관료들은 정말 한보철강 비리사태에 대해 책임이 없는가. 김대통령의 측근과 정치인 및 은행장들에게만 책임이 있는가. 금융기관의 대출활동을 일일이 파악하거나 관여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금융기관의 대출이 어떻게 되든 행정부로서는 상관없다는 말인가. 경제부총리가 직접 관장하고 있는 재정경제원은 금융감독원을 아래에 두고 국책은행·시중은행 등 금융기관의 여·수신업무 등 영업활동을 지도·감독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재정경제원의 금융기관에 대한 행정지도 등 간섭은 여전히 심한 것이다. 관치금융의 근성은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다.
재경원은 관련은행들이 수차례에 걸쳐 한보철강에 대한 과도한 편중대출의 문제점을 호소, 이의 타결을 요청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압」이 배후에 있어 관여를 기피해 온 것으로 금융가에서는 전해진다. 주무당국인 재경원의 이러한 복지안동의 자세가 문제를 키워 왔다고 하겠다.
재경원은 경제관련부처 가운데서 「왕중왕」이다. 금융, 예산, 재정, 외환, 증권, 보험, 경제계획, 대외경제, 물가 등 경제에 관한한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고 있다. 이에 걸맞게 재경원관료들은 엘리트 경제관료들이다. 재벌그룹 등 민간기업의 역량과 비중이 관주도의 개발 독재시대에 비해 월등히 높아졌다고는 하나 재경원이 우리 경제정책의 구심력인 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러한 재정경제원의 장인 한부총리에게 이제 필요한 것은 한보사태를 직시, 이를 타개해 나갈 수 있는 안목식견과 리더십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