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겠다.지난번 선거때 나는 김영삼 대통령을 찍었다. 그를 찍으면서 한가지 불안했던 것은 그가 지나친 낙관주의를 가진 것은 아닐까. 그것이 어쩌면 하느님을 믿는 청교도정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혹시 내가 하는 일은 모두 하느님의 편에 선 정의의 길이라는 독선을 불러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또 하나는 화려한 넥타이에 마치 육체미운동을 하는 사람과 같은 걸음걸이. 남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에 지나치게 신경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불안감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를 믿었다. 그는 독재를 상대로 정말 멋지게 싸웠다. 특히 박정희정권 말기에 홀로 국회의사당에 앉아있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나는 기뻐서 울었다. 이제 드디어 우리나라에 32년만에 문민정부가 태어나는구나 하고 가슴이 뿌듯했었다. 특히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정말 감동했었다.
지난 30년간 우리는 멋지게 거수경례를 하던 퇴역장성 세 명의 대통령을 줄기차게 봐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보라. 우리의 문민대통령은 어색하게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그렇다. 저런 서투른 거수경례야말로 지극히 당연한 것이 아닐 것인가. 그러한 전국민의 축복속에 그는 대통령에 올랐다.
대통령에 오른 그 즉시부터 두 가지의 꼴불견이 시작되었다. 그 하나는 대통령이 되기 전의 그분을 모시던 가신들의 모습이었다. 우리는 인간 김영삼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이지, 그분을 중심으로 하는 패밀리를 함께 부통령으로 뽑은 것은 아니다. 내가 만약 가신이라면 그분이 대통령에 오르자마자 행방불명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모시는 군주를 위하는 길임을 어째서 그들은 몰랐던 것일까. 마치 잔치상을 벌인 것 같은 걸신들린 가신들의 모습은 대통령의 눈이 어두운 것일까 하는 첫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대통령직에 오른지 얼마되지 않아 벌써 대권논의가 시작되고 갑자기 그들이 주자가 되었다. 우리가 지금 「대부」라는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일까. 정치를 조직폭력배들의 이권다툼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 집권시나리오라니. 시나리오에 의해서 대통령이 될 수 있다니. 아아, 이 무서운 국민들을 시나리오에 의해서 속일 수 있는 허수아비로 생각하다니.
또 하나는 대통령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분에게는 34세 밖에 안된 현철이라는 아들이 있는데 매우 똑똑하고 아버지로부터 귀여움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 그는 벌써 아버지를 대통령으로 만든 시나리오에 깊숙이 관여했으며 보이지 않는 얼굴로 정치에 개입하고 있다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정말 고통스러웠다. 그분에게 한 표를 찍은 국민으로서 나는 정말 슬펐다. 나는 그 이야기가 단순히 소문으로 그치길 바랐다. 그분이 대통령에 오른 직후부터 이 소문은 전국을 유령처럼 떠돌았다. 만약 아니라면 어째서 내가 좋아하는 대통령 김영삼은 그를 국민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떠나 보내지 않은 것일까. 그를 왜 끝까지 소문의 진원지에 놔두고 있는 것일까. 그리하여 마침내 아들의 입에서 「야당과 특정 음모세력, 그리고 언론」에까지 경고하는, 이해할 수 없는 세기말적인 말이 흘러나오게 하는 것일까.
대통령이 칼국수를 먹고있는 동안 주위사람들은 무엇을 먹었으며 대통령이 한푼의 돈을 받지않는 동안 주위사람들은 얼마의 돈을 받았는지 반성하라. 그리고 대통령을 정말 군주로 생각하였다면 자결하라. 자결하여 정치적 생명을 절단하라. 도대체 권력이 무엇인가. 전직대통령들을 보라.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 않는가. 아아, 이 우스꽝스러운 지도자들을 우리는 나랏님으로 모시고 있다. 자기 손으로는 한푼도 벌어보지 못한 현실의 무능력자들이 우리들의 지도자들이다.
마침내 오고야 말았구나. 우려하던 것이 마침내 오고야 말았구나. 나는 그래도 내가 뽑은 김영삼 대통령을 믿는다. 아직도 우리가 보장한 1년의 임기가 더 남아있지 않은가. 국민들이여, 아직 막은 내리지 않았다. 우리가 사랑했고 사랑하고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김영삼 대통령을 지켜보자. 끝까지 절망하지 않고 5막의 마지막 장을 시퍼렇게 눈 부릅뜨고 끝까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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