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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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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지평선)

입력
1997.0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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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은 혁명 또는 정치 종교적 이유 등으로 자기 나라에서 살지 못하고 남의 나라로 몸을 피하는 것을 말한다. 그야말로 목숨을 거는 일이다. 망명이란 한자어엔 목숨을 없애는 일이란 뜻이 담겨 있다. 예부터 망명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는데 1620년 영국 스튜어트왕조의 박해를 피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으로 떠난 청교도들도 일종의 망명객들이었다.망명이란 한자어는 원래 망명하면 이름을 바꾸거나 감추고 살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망명」으로 표기했었다. 그러나 망명은 이것이 안고 있는 절박하고도 위험한 상황을 나타내기에는 어딘가 미흡했기 때문인지 목숨을 거는 일이란 뜻의 망명으로 표기가 바뀌었다. 이는 15일 밤 테러를 당한 이한영씨가 몸으로 말해 주고 있다.

현재 우리는 북한정권이 불안정해지면서 망명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이은 단신귀순도 부족해 한동안 가족단위의 귀순이 국민들의 관심을 끌더니 이번엔 황장엽 북한노동당비서란 고위직 인사까지 북한을 탈출하는 사태로 발전,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처럼 북한주민의 귀순과 망명이 계속되다 보니 이에 대한 정부나 국민들의 감각이 무디어진 것도 사실이다. 망명이 안고 있는 절박함과 위험성을 생각하면, 그것도 상대가 북한이란 테러집단임을 떠올리면 정부의 대비책이나 국민들의 자세나 인식에 많은 문제가 있다고 할 것이다.

이러다 보니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이지만 안보교육은 북한이 시켜 주고 있다는 농담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지난번 강릉해안의 잠수함침투사건이 우리의 느슨한 안보태세를 점검하고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그럴 듯한 이야기다.

이한영씨 피습사건도 마찬가지다. 이 사건으로 말뿐인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한 귀순자들에 대한 보호와 관심이 드높아질 것이 틀림없다. 그동안 풀어졌던 대공태세를 생각하면 오히려 북한에 감사해야 할 판이다. 이씨의 희생을 헛되이 해서는 안될 것이다.<논설위원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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