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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수부 인맥 TK서 PK로

입력
1997.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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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부장 14명중 TK 4명·PK 5명/수사능력기준 발탁/지연·학연 등도 큰 영향대검 중앙수사부의 부장과 과장 자리는 검사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거치고 싶어하는 검찰의 「요직」이다. 그래서 검찰총장의 「직할부대」인 중수부 검사가 되기위한 로비가 간혹 벌어진다는 얘기도 들린다. 통상 동기생 가운데 수사능력을 인정받은 사람이 발탁되지만 검찰내 지연 학연에 얽히거나 권력 측근의 줄을 잡고 중수부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중수부가 다루는 사건 자체가 정치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같은 얘기들에 수긍이 간다. 중수부장 출신의 검찰 고위관계자는 『많은 검사들이 가고싶어 하는 곳이 중수부지만 중수부 검사들이 모두 뛰어난 수사능력을 갖춘 것은 아니다』며 『제대로 된 중수부 검사는 수사능력과 결단력 용기 집념을 두루 갖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남 초대 중수부장부터 14명의 역대 중수부장 가운데 PK(부산 경남)출신은 김두희 김경회 김태정 안강민 최병국 부장 등 5명이고 TK(대구 경북)출신은 한영석 강원일 박종철 정성진씨 등 4명이다. 이종남 최명부 송종의씨 등은 SK(서울 경기)출신이다. 호남과 충청출신은 신건 전 법무부차관과 이원성 부산고검장 각 1명씩이다. 김태정 차관의 경우 부친의 고향(원적)은 전남 장흥이지만 부산에서 태어나 자랐고 광주고교를 나온 특이한 경력을 지니고 있다. 중수부장의 경우 단연 TK, PK, 경기고 인맥이 많다. 중수부 과장도 마찬가지다.

경남 산청 출신으로 경기고를 나온 김두희(고시 14회)전 법무부장관이 중수부장으로 있을 때는 1, 3, 4과장에 김태정 차관, 원정일(사시 7회·경기고) 대검 강력부장, 안강민(사시 8회·경기고) 서울지검장이 포진, PK와 경기고 인맥으로 얽혀 있었다. 당시 2과장은 충주출신의 이원성(사시 5회·충주고) 현 부산고검장이었다. 후에 이중 1, 2, 4과장 3명이 차례로 중수부장을 거쳤으니 중수부 과장자리는 가히 검찰내에서 출세와 승진의 보증수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0여년간의 중수부 과장들을 출신지역별로 살펴보면 PK출신은 현정권 출범이후 진출이 두드러졌고 6공때까지는 TK출신이 다수를 차지했다. 과장 출신 가운데 PK는 이종찬(사시 12회) 서울남부지청장, 정홍원(사시 14회) 부산지검 1차장, 배재욱(사시 15회) 청와대 사정비서관, 황성진(사시 15회) 서울북부지청차장, 김성호(사시 16회) 서울지검 특수2부장, 안대희(사시 17회) 서울지검 특수3부장 등이 있다.

TK출신은 중수부장 4명을 낸 외에 박순용(사시 8회) 법무부검찰국장, 강신욱(사시 9회) 청주지검장, 이명재(사시 11회) 사법연수원부원장, 제갈융우(사시 11회) 부천지청장, 김영철(사시 11회) 부산고검차장이 과장자리를 거쳐갔다.

심재륜(사시 7회) 인천지검장, 한부환(사시 12회) 서울지검3차장, 차정일(사시 2회) 변호사 등이 중수부 과장을 지낸 서울출신이고 유재성(사시 8회) 법무부교정국장, 신승남(사시 9회) 법무부기획관리실장, 김대웅(사시 13회) 성남지청장, 김학재(사시 13회) 서울고검검사, 박주선(사시 16회) 서울지검특수1부장이 호남출신으로 과장을 거쳐갔다. 충청출신으로는 각각 부장과 과장을 지낸 이원성 부산고검장과 김수장(사시 8회·대전고) 창원지검장뿐이다.

현 중수부 진영도 부산고 출신의 최병국 부장을 비롯, 문영호(사시 18회) 1과장, 안종택(사시 20회) 3과장 등 PK 인맥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정수(사시 15회·성동고) 수사기획관은 충남 서산, 박상길(사시 19회·경기고) 2과장은 서울 출신이다.

검찰 관계자는 『총장 직할조직인 만큼 중수부 과장 인선은 총장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며 아무래도 측근들을 데려다 놓게 된다』고 말했다. 때로는 중수부장이 총장으로부터 「위임」받아 과장을 인선, 총장에게 추천하는 경우도 더러 있긴 하다. 서울지검 특수부 출신의 신한국당 홍준표 의원은 『수사능력보다는 인맥 지연 학연에 의해 중수부 검사로 발탁된 경우가 종종 있었다』며 『중수부만큼은 보직관리 차원에서 운영돼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중수부에는 수사통을 데려다 놓고 기수개념을 초월해 4∼6년 단위로 장기적으로 일하도록 해야 수사능력도 키우고 범죄정보도 축적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이진동 기자>

◎81년 발족 1실 4과 구성/중수부 연혁과 편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5공때인 81년 4월24일 발족, 초대 이종남부장의 취임과 함께 장영자 사건 등 굵직굵직한 사건 수사로 명성을 쌓아 왔다.

실제 연혁은 이보다 20년전인 61년 대검에 특수수사를 전담하는 중앙수사국이 설치됐던 때로 거슬러 올라 간다. 수사과 사찰과 특무과 등 3개과를 두고 현재 중수부와 똑같은 업무를 수행했다. 이후 중앙수사국은 5·16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들어선 후 62년 8월 수사국으로 개칭됐고 편제도 수사 1∼4과로 바뀌었다. 이어 유신 직후인 73년 특별수사부로, 다시 5공에서 중앙수사부로 이름이 바뀌었다.

현재 중수부는 검사장 직급의 부장아래 1실 4과가 있다. 현정권이 들어선 후 94년 2월 기존의 수사 1∼4과를 수사 1∼3과와 수사기획관실로 개편했고 95년에 범죄정보관리과를 신설했다. 1∼3과 사이에 특별한 업무영역의 구분은 없다. 원칙적으로는 각과가 대형 수뢰사건이나 공직자 비리혐의를 인지하면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 정치적 성격이 가미될 수 밖에 없는 청와대 하명사건도 당연히 중수부의 몫이다.

웬만한 수사는 1개과의 수사팀이 전담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대형비리사건에는 2개과나 3개과가 동시에 투입된다. 노태우씨 비자금사건은 2·3과와 서울지검 특수부 검사들이 수사를 맡았고 이번 한보사건에는 1∼3과 전 직원이 동원됐다.

각 과에는 과장(부장검사) 외에 수사관(5급)이 2명씩 있고 주사 서기 등 수사업무를 돕는 인원까지 합해 한 과에 12∼13명의 직원이 소속돼 있다.

대형사건 수사때는 대검 소속 검찰연구관들이 투입되기도 한다. 이 경우 연구관들은 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서울지검 검사로 겸임발령을 받게 된다. 동화은행사건 수사를 소재로 「성역은 없다」 라는 책을 내 화제를 모은 함승희 변호사도 이런 경우였고 한보 사건수사에도 4명의 연구관이 참여하고 있다.<이상연 기자>

◎잇따른 사건… 중수부 전성시대/대형수뢰·공직자비리 수사/최고 엘리트 자부심

대검과 각 지검에서 특별수사를 담당하는 검사들은 흔히 「검찰의 꽃」이라고 불린다. 그중에서도 대검 중수부 검사들은 최고의 엘리트로 통한다. 이들은 검찰내 인사에서 중용되는 것은 물론, 일거수 일투족이 정치권과 여론의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중수부 검사들은 권력형 비리 등 초대형 사건을 처리하는 중수부의 특성상 검찰총장, 나아가 검찰 전체의 체면을 걸고 일한다는 자부심이 있다. 중수부에 근무하려면 탁월한 수사력과 명석한 판단력, 일에 대한 집념이 필수적이라고 검찰관계자들은 말한다. 또 자금추적 등 나름대로 독보적인 노하우를 갖추어야 한다.

공안부와 함께 대검의 양날개로 불리던 중수부가 「비교 우위」를 갖기 시작한 것은 현정권 들어서이다. 5, 6공때만 해도 공안통 검사들이 동기생 가운데 선두를 달리는 경우가 많았다. 학생시위와 민주화 투쟁 등 시국사건이 끊이지 않은 데다 대규모 간첩단 사건도 잇따라 공안부에 힘이 실릴 수 밖에 없었다.

야권과 재야단체로부터 「정권수호의 첨병」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공안부 검사들은 정권이 바뀌면서 「전력시비」에 휘말리는 등 세 약화를 겪었다.

중수부와 공안부의 위상변화에는 김영삼정권 출범 초기 불어 닥친 대대적인 사정바람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정치인과 고위관료, 군장성, 은행장 등 사회 상층부에 대한 사정작업이 이어지면서 중수부 검사들은 숨가쁜 활약을 했다. 여론의 각광을 받은 것은 물론이다.

당시 김도언 검찰총장을 비롯, 송종의 대검차장, 김태정 중수부장, 이원성 형사부장 심재륜 강력부장 등 대검의 주요보직을 한결같이 특수 수사통이 장악하면서 중수부 전성시대를 예고했다. 이를 시작으로 검찰인사에서 중수부 출신 검사들이 잇달아 중용됐다.

그러나 중수부 역시 아직까지는 검찰에 따라 붙는 「권력의 시녀」라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외압과 정치적 고려에 얽매이지 않는 엄정한 수사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그만큼 큰 때문일 것이다.<이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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