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과세」가 올해 또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전통문화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에 밀려 수그러들었던 「이중과세」 폐단이 최근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무역적자폭 급증 분위기속에 경제계를 중심으로 서서히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근로자들은 세계적인 추세와 우리 고유의 전래명절이란 점을 들어 신정과 설 모두 휴일로 하는 현행제도가 당위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중과세의 옹호론과 반대론을 들어본다.<편집자 주> ◎옹호입장/김득중 한국전례연구원 원장/설날은 연말연시 개념아닌 민속명절/연휴일도 69일 불과 ‘경제난 원인’ 못돼 편집자>
노는 날이 너무 많아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중과세에 대한 시비가 일고 있다. 어려운 경제를 풀기 위해서는 노는 날을 줄이고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는 주장에 「그렇지 않다」고 맞설 수는 없다. 그러나 이중과세금지가 경제난의 해결책은 아니다.
이중과세시비에 대한 빌미는 이미 100년전에 생겼다. 1894년 갑오경장때 개혁의 하나로 1896년부터 양력을 공식력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새 달력에 의한 양력 1월1일을 신정이라 하고 묵은 달력에 의한 음력 정월초하루를 구정이라고 했다. 1월1일은 「설날」이니까 신정은 양력설이고 구정은 음력설로 불렸다.
그러나 오랜 관습에 의한 음정은 우리명절이고 개화사상에 의한 양정은 오랑캐의 명절이라는 관념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조상에 대한 제사는 굳이 음정으로 지내는 사람이 많아 지금도 이 말은 설득력을 갖는다. 이러한 관념은 1910년에 국권을 상실하면서 「양정을 쇠면 친일매국, 음정을 쇠면 반일애국」으로 변화했다. 이에 따라 전통을 아끼는 사람들은 음정을 고집하게 됐다. 당연히 일제는 강압적으로 양정을 쇠도록 정책을 폈다. 그때만 해도 민족정서상의 문제였을 뿐 이중과세란 말은 없었다. 1945년 해방이후 정부가 경제부흥을 꾀하면서 노는 날을 줄이고 낭비를 억제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중과세란 말을 썼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달력에서도 「설날」이란 말이 없어졌다.
그러나 89년 2월1일 경제사정이 좋아지면서 종래 「민속의 날」이라고 했던 음력 정월초하루를 「설날」로 복원하고 전후 3일을 공휴일로 정했다. 오랫만에 되찾은 민속명절이었다. 미뤄볼 때 설날은 연말연시라는 과세의 개념이 아니다. 전래의 민속명절이므로 이중과세의 잣대로 말할 수는 없다. 해가 바뀌는 연초는 생활력인 양력 1월1일이고 음력 정월초하루는 민속명절 「설날」이니 동일시할 수 없는 것이다. 어느시대든 해가 바뀌는 연초에는 쉬는 것이 동서고금 어디에서든 세계적인 관행이다. 뿌리깊은 민속명절에 쉬면서 즐기는 일은 문화민족의 긍지라 할 것이다.
경제난을 이중과세금지로 풀 것이 아니라 근로의욕의 증대를 통한 생산성의 제고와 생산공정의 효율극대화를 통해 풀어야 한다. 경제선진국도 공휴일이 우리보다 적은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법정공휴일이 69일밖에 안되지만 100일이 넘는 선진국이 많다는 사실은 경제악화와 공휴일수가 정비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반증한다. 민속명절을 아끼는 문화민의 긍지를 살려 이를 생산성향상으로 직결시키는 지혜가 아쉽다.
◎반대입장/김영배 경총 상무/설있는 2월 기업 가동일수 20여일뿐/이중 소비지출 낭비… 합리판단 할때
신정과 구정의 문제는 분명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속에는 서양과 동양의 관습 차이가 존재하고 도시와 농촌의 삶이 따로 존재하고 있어 설연휴의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분명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사회가 명절이나 국경일 그리고 공휴일의 문제에 대해서 보다 냉정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해볼때도 되지 않았나 한다.
광복절은 광복절 나름대로의 의의 때문에 국경일로서 존재가치를 가지듯이 모든 휴일은 나름대로의 고유한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설연휴도 나름대로의 의미가 존재하는 것이다. 현충일날 정릉골짜기가 음주객의 고성방가 현장이 되는 것을 보면 어색하듯이 연말을 보내고 신년을 준비하는 새해를 막연히 휴일을 즐기는 기분으로 불과 한달사이에 두번씩이나 맞이하는 것도 어딘가 어색하다. 이제 바야흐로 세계화시대에 접어들면서 신정과 구정의 이중적 존재는 개선되어야 할 시점에 온 것 같다. 특히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이중과세의 문제가 매우 부담스러운 것임은 사실이다.
연말이 되면 기업내의 모든 업무가 1년을 마감하느라고 바쁘다. 신정을 위한 준비도 마무리 되어야 한다. 때로는 근로자들을 위해 종무식을 앞당겨 하기도 한다. 그러나 새로운 자세로 다짐을 하고 시작한 새해는 불과 한달뒤에 구정을 맞이하게 되고 귀향하는 근로자들의 교통대책을 세우랴, 특별여비나 상여금을 준비하랴, 또 한차례 홍역을 치루어야 한다.
대개 구정은 2월에 있기 때문에 실제로 2월 한달은 상당수 기업들의 경우 20여일밖에 가동되지 않는다. 이것은 정말 비생산적인 것이다. 2월은 기업가에게 가장 많은 비용으로 가장 적은 생산을 감당해야 하는 달이다.
물론 구정이 민속절의 의미를 가지고 우리 생활의 한 부분이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유 민속절의 의미는 그냥 되새기는 것만으로 족하다. 이제는 우리의 농촌이 영농기계화와 영농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달(월)의 힘이 미치는 자연현상에 의존하는 체계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농촌의 인구도 급격히 줄어들어 10%미만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굳이 신정과 구정의 이중적 연휴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물론 휴일수를 줄이는 것은 많은 반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휴일수를 줄이지는 않더라도 신정과 구정을 합치는 형태로 해서 이중적 과세를 없애는 것이 여러면에서 바람직 하리라고 본다. 신정과 구정은 결국 이중적 소비지출을 요구하는 휴일이 될 수 밖에 없다.
◎정권 바뀔때마다 정책 ‘오락가락’ 혼란 가중/최근 경기침체속 경제계중심 ‘폐단론’ 제기
한달여 간격으로 신정과 설을 잇따라 쉬는 현행 공휴일 규정에 대해 경제계에서 문제를 제기, 해묵은 이중과세문제가 또다시 쟁점이 됐다. 신정과 설을 합쳐 닷새이상 쉬게 됨으로써 국가경쟁력이 떨어지고 사회적 낭비가 늘어나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한다는 게 경제계의 주장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2월은 한달이 28, 29일 밖에 안되는데다 설 휴일까지 겹쳐 근로일수가 20일도 안되는 경우가 있다』며 『생산차질과 교통체증으로 인한 경제적·사회적 손실이 엄청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노동단체들은 우리나라의 총휴일수(69일)가 선진국보다 훨씬 적어 신정과 설 휴일은 근로자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노동단체들은 또 신정과 설휴일중 2, 3일을 줄인다고 경제지표가 크게 달라진다는 견해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오히려 검소한 생활과 근면한 자세, 나아가 청렴한 공직분위기 조성 등이 국가경쟁력 회복에 더 시급한 과제라고 주장한다.
한때 설휴일 부활에 반대했던 서경석 전 경실련사무총장은 『정통성에 문제가 있었던 5공화국 정부가 선심정책의 하나로 구정을 허용해 휴일제정 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민족명절로 자리를 잡은만큼 이제와서 이중과세문제를 재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정만 쇠라」 「설을 쇠도 좋다」고 오락가락한 정부의 정책도 이중과세 방치에 한몫했다는 지적이다.
구한말 고종황제가 양력을 채택 1월1일을 「설」로 정한후 신정 3일을 공휴일로 해 신정단일과세를 지속해오다 85년 5공에 의해 구정이 「민속의 날」로 명명돼 공휴일로 부활됐다.
89년 6공정부는 신정휴일을 하루 줄이는 대신 설날을 사흘 연휴로 부활시켰고 이후부터 이중과세 시비가 일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후 이중과세의 폐해를 제기, 94년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제도변경검토를 지시했으나 의견이 엇갈려 유야무야됐다.
총무처가 94년 12월 한국갤럽에 의뢰, 전국 20세이상 남녀 1,013명을 대상으로 전화설문조사결과 68.2%가 이중과세 제도의 개선 필요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총무처 관계자는 『신정과 설 등 공휴일은 충분한 검토를 거쳐 결정된 공휴일인만큼 어느 일방의 논리로 해결해서는 안된다』며 『경제침체로 휴일수를 줄인다면 앞으로 경제사정이 호전될 경우 다시 휴일수를 늘려야 하는냐』고 반문, 제도변경에 난색을 표명했다.<김혁 기자>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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