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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을 되찾아야 한다/김세원 서울대 교수·경제학(화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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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을 되찾아야 한다/김세원 서울대 교수·경제학(화요세평)

입력
1997.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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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한보사태 이어 황장엽 망명 ‘어수선’/경제회복·통일의 전제 사회안정부터 이뤄야『하필 이렇게 어수선한 때 (북한의 고위층이) 넘어오다니』 지난 12일 황장엽 비서의 망명소식을 전하는 어느 방송진행자의 촌평이다.

당혹감과 아쉬움이 뒤섞인 이 솔직한 표현은 당시 국민 대다수의 착잡한 심정을 그대로 대변해 주었다는 느낌도 든다. 북한이 어떤 상황에 와 있는지는 다 잘 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망명요청이 갖는 의미를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정권에 치명적일 수도 있는 정치추문에 온 사회가 휘말려 있는 현상황은 불만스럽기만 하다.

다른 한편 이 사건에 파묻혀 한보사태의 진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분위기가 지배적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발생한 노동법 개정의 변칙처리, 한보비리, 그리고 특히 북한 고위층의 망명 등 일련의 사건을 지켜보면서 다음과 같은 두가지 면에서 기본적 자세의 확립이 요구되고 있다.

우선 사회적 통합의 필요성을 들 수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정치발전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믿는다. 어느 사회에서나 모순과 갈등이 있게 마련이고 견해를 달리 하는 이해집단 간에 대립을 보일 수 있다.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 법질서가 지배하고 원칙과 게임규칙이 지켜지는 투명하고도 예측가능한 사회가 정착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오늘날의 사회적 불안이나 냉소적 분위기가 현정권의 정치적 역량, 그리고 해이해진 기강과 직접 관련이 있음은 다시 지적할 필요가 없다.

강한 정치지도력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경제발전이 이룩될 수 없다. 연초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정치안정과 경제안정 사이에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실증자료를 발표한 적이 있다. 구태여 외국의 사례까지 인용하지 않더라도 정치 사회적 안정의 바탕 위에서만 시장경제가 꽃필 수 있음은 상식에 속하는 얘기다.

또한 우리는 통일에 관해 결코 환상을 가져서는 안되며 차분히 내실을 다져가는 의연한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북한과 비교할 때 우리는 흔히 체제우위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맞추어 과연 정치적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틀이 제대로 자리 잡혀가고 있는지 자신있게 대답하기 어렵다. 북한에 비하여 남한이 소득수준이나 산업구조 면에서 크게 앞서고 대외관계가 화려할 뿐만아니라 국제적 지위가 월등하게 높다는 등의 갖가지 격차는 통일을 유리하게 전개시킬 수 있는 부분적 여건에 지나지 않는다. 그보다 더 결정적인 요인은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체제에 대하여 사회 구성원들이 얼마만큼 신뢰 애정 그리고 긍지를 갖고 있느냐는데 있다고 본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요구되는 이러한 두가지 기본적인 접근은 서로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다시 말해 민족 최대의 과업인 통일에 미리 충분한 준비를 갖추어 나가야 하지만 이와 함께 국가발전이라는 차원에서 법질서와 정치적 게임규칙을 확고하게 재정립하지 않으면 안된다. 구체적으로 한보비리와 같은 전근대적인 부정부패의 사슬을 청산하지 않고 또 노동관련법 개정이 국민적 합의에 기초하지 못함으로써 사회적 불신과 좌절감이 지속된다면 경제안정이나 회복을 결코 기대할 수 없다고 믿는다.

주지하다시피 작년 경상수지 적자(237억달러), 외채(누적규모 1,050억달러) 및 국내 설비투자 감소(―2.1%) 등 주요 경제지표가 심각한 위기국면을 예고하고 있다. 더구나 금년 들어 이미 저성장, 고물가까지 점쳐지고 있으며 기업가 근로자 및 공무원들 사이에는 무기력 증후군이 번지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와 같이 비관적인 전망에 정치 사회불안까지 겹친다면 그 경제적 파급이 어떻게 전개될는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결국 해결의 실마리는 정부 여당의 정치적 결단에서부터 찾아야 한다고 믿는다.

끝으로 일의 처리에는 항상 순서가 있는 법이다. 우선 북한 고위층의 망명사건은 전담기관에 맡겨져야 하며 우리사회는 냉정을 되찾아야 한다. 본론인 한보사태와 노동관계법의 처리에 있어서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원칙에 따라 정리함으로써 경제회복의 전제인 사회안정을 이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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