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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공학과 윤리적 책임/변광호 생명공학연구소장(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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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공학과 윤리적 책임/변광호 생명공학연구소장(아침을 열며)

입력
1997.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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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 송아지의 탄생, 모유와 똑같은 우유를 분비하는 젖소, 원하는 때에 맞추어 꽃을 피우는 푸른 장미, 달걀을 낳는 수탉. 상상하기 어렵던 일들이 생명공학자들의 실험실에서 일어나고 있고, 이들 중 상당부분은 이미 실용화 단계에 이르고 있다.1953년 젊은 생화학자 왓슨과 크릭이 생명체의 유전물질인 핵산(DNA)의 구조를 밝혀냄으로써 싹이 트기 시작한 유전자혁명의 실체가 서서히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탄생의 신비조차도 과학자들의 손에 의해 조작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생명공학은 단순한 과학이 아닌 윤리·철학적 문제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만약 동물복제기술이 인간에게 사용되면 어떻게 될까. 로빈 쿡의 베스트셀러 소설 「돌연변이」속에서 인공수정과 염색체 조작으로 태어나 갖가지 재난을 일으키는 천재 주인공이 현실의 인간으로 나타날지도 모른다.

현재 인간생식세포에 대한 유전자조작은 세계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다만 체세포의 유전자조작은 의학적 실험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식물체나 가축 어류 미생물에 대한 유전자조작도 엄격한 규제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도 보건복지부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권고사항을 반영해 「재조합 DNA실험지침」을 제정, 금년내 시행하기로 돼있다.

그러나 이러한 물리적인 규제는 실험절차의 통제와 사후 처벌적인 수단에 불과한 것이지 근본적인 문제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특히 유전자조작과 같은 작업은 은밀하고 소규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예방적인 규제가 매우 어렵다. 그리고 만의 하나라도 실험과정에 실수나 오류가 발생하면 치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인류생존의 위협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마음 속에 올바른 윤리관과 높은 도덕성에서 우러나온 겸손과 절제의 가이드라인을 확고하게 간직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생명체의 본질인 유전자를 다루는 과학자들에게는 특별한 소양과 높은 윤리의식이 요구된다는 것을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이러한 문제를 과학자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 일반 국민들에게도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여야 할 뿐아니라 적극적으로 공론화함으로써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물론 「일어날지도 모르는 위험성」을 훨씬 능가할 정도로 유전자 조작이 유용하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인체의 질병유전자를 찾아내어 건강한 유전자와 바꾸어 줌으로써 암이나 유전병 같은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다. 또 인체에 미량으로 존재하는 유용물질(항균성, 항바이러스성, 면역증강물질 등)에서 추출한 유전자를 동물체에 이식시켜 유전형질전환 동물이 의약품 성분을 생산하게 함으로써 질병퇴치에 획기적인 기여를 할 수도 있다. 식물유전자 조작을 통한 종자개량으로 녹색혁명을 일으킬 수 있으며 미생물의 특성을 변형시켜 환경오염물질을 정화하는데 이용하기도 한다.

새로운 과학기술이 인류사회에 유용성과 잠재적 위험성을 동시에 가져다준다면 우리는 그 기술을 전적으로 배척할 수도 없고 무분별하게 받아들일 수도 없다. 특히 윤리적 문제가 수반되는 생명창제에 관한 분야는 매우 신중한 접근과 광범위한 사회적 관심 및 여론의 환기가 필요하다.

역사를 통하여 우리는 비이성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의 불완전성, 부주의, 무지 때문에 과학기술의 진보가 인류의 재앙을 자초한 사례를 무수히 보아왔다. 불의 발견에서부터 시작해 화약의 발명, 원자력의 발견, 컴퓨터의 발명, 그리고 DNA의 발견에 이르기까지 윤리문제와 결부되지 않은 것이 없다. 그중에서도 생명의 본체인 유전자를 다루는 생명과학자들에는 신이 내려주신 「판도라의 상자」를 소중히 간수하여야 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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