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가락 펴 “간첩… 간첩…” 실신/범인,이씨 입 막으며 옆구리 가격/반항하자 권총꺼내 머리에 발사/비상계단·지하주차장 통해 도주15일 밤 발생한 김정일의 전 동거녀 성혜림의 조카 이한영(36)씨 피격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범인들은 미리 대기하다 귀가하는 이씨를 폭행하고 권총을 쏜 뒤 지하주차장을 통해 유유히 도주했다. 범인들은 밤늦은 시각 인적이 드문 고층 아파트를 범행현장으로 선택, 완전범죄를 노렸으나 주민 3명에 의해 범행장면이 목격됐다.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이씨 피격 및 범인 도주상황을 재구성한다.
▷범행◁
15일 하오 9시52분께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현대아파트 418동. N백화점에 개설했던 매장을 15일 폐쇄, 낙담해 있던 이씨는 피곤한 몸을 엘리베이터에 실었다. 지난 해 12월부터 임시거처로 신세를 지고 있는 김장현(44·한양대 교직원)씨의 1402호 집에 가기 위해서였다. 엘리베이터가 14층에 멈추며 신호음이 울리고 문이 열리는 순간, 비상계단 쪽에서 건장한 체격의 남자 2명이 재빨리 다가왔다.
30, 40대로 보이는 범인들은 각각 1백75㎝, 1백70㎝의 키에 한 명은 바바리코트를 입고 있었다. 범인중 한 명이 이씨의 입을 틀어 막으며 옆구리를 가격했다. 몸을 비틀며 반항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바라리코트를 입고 있는 범인이 옷 속에서 벨기에제 브라우닝권총을 꺼냈다. 소음기를 다는 듯 두 손으로 권총을 쥐었다. 다른 한 명은 뒤에서 이씨를 계속 잡고 있었다. 범인은 싸늘한 표정으로 이씨의 머리와 가슴을 향해 정확히 겨냥해 총을 쏘았다(경찰은 범인들이 당초 납치하려다 이씨가 반항하자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장에서 총성이 들리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소음기를 사용한 것이 분명하고, 현장에서 소음기를 달았다면 권총살해는 2차 수단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목격 및 신고◁
1402호에서 비디오를 보고 있던 김씨의 부인 남상화(42)씨는 문밖에서 싸우는 듯한 시끄러운 소리가 나자 비디오폰을 들었다. 비디오폰을 통해 범인이 이씨를 향해 권총을 쏘는 장면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범인이 도주한 뒤 문을 열고 현장에 쓰러져 있는 이씨를 먼저 본 사람은 앞집 1401호의 박종은(44)씨였다. 박씨는 권총을 쏘고 비상계단을 통해 달아나는 범인 2명의 뒷모습을 본 뒤 남씨를 나오도록 했다. 남씨가 인터폰으로 경비원을 찾았으나 경비원은 화장실에 가고 없었다. 이씨는 머리에 피를 흘리며 등과 머리를 벽에 기댄채 앉은 자세로 신음중이었다. 이씨는 범인이 2명이라는 듯 손가락 2개를 펴보이며 『간첩』 『간첩』이라고 2차례 말한 뒤 의식을 잃었다. 박씨는 곧장 119와 112신고를 했다.
▷범인도주◁
이씨를 권총으로 쏜 범인 2명은 비상계단을 통해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나머지 1명은 지하주차장 출입구에 있었다. 키는 1백65㎝ 정도에 노란 색의 캐주얼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하오 10시께 419동에 사는 장희철(44)씨는 평소처럼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며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주민들은 통상 주차장 차량 출입구로는 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장씨가 지하주차장에서 승용차를 주차시키기 위해 418동쪽으로 차를 모는 순간, 418동 출입구쪽에서 남자 2명이 걸어왔다. 비교적 침착하고 차분하게 걷던 범인들은 주차장 입구쪽에서 3번째 줄 3번째 칸에 주차시켜 놓은 승용차에 탔다. 장씨는 범인들의 차량이 빠져나갈 경우 그 자리에 승용차를 주차시키기 위해 5분여동안 기다렸다.
그러나 범인들이 탄 승용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장씨는 할 수 없이 다른 자리에 주차하고 계단을 통해 집으로 올라갔다. 그 때까지도 범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혹시라도 장씨가 승용차의 종류나 번호판을 볼 수 있다는 생각때문인 것 같았다.<이범구·서사봉·박일근 기자>이범구·서사봉·박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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