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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일야 방성대곡/김영현 소설가(1000자 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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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일야 방성대곡/김영현 소설가(1000자 춘추)

입력
1997.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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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을 방문한 적이 있는 어느 재미 작가가 술자리에서 우스개 삼아 『북쪽은 지금 아사 직전이고, 남쪽은 폭발 직전이다』라고 말한 것이 기억난다. 웃으라고 한 말이었기 때문에 다들 웃긴했지만 여간 씁쓰레한 것이 아니었다.그의 말대로 지금 북쪽은 북쪽대로, 남쪽은 남쪽대로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중이다. 비록 연이은 홍수라는 자연재해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북쪽은 폐쇄사회가 마침내 도달할 최대치의 구렁텅이에 빠져들고 있다. 믿고 싶지는 않지만 인육과 관련된 그야말로 지옥도 같은 흉흉한 소문이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는가 하면, 마침내는 주체사상의 창시자라는 고위인사까지 망명을 하는 형편에 이르렀다. 경제적으로 뿐만아니라 오랜 독재체제의 결과 모든 인간은 우상화한 한 인간과 한 집안에 대한 맹목적 충성으로 숨통이 막힐 지경이다. 도대체 이런 곳에 무슨 희망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가 하면 또 남쪽은 어떤가. 터져 나오는 대형사고는 마치 온 나라를 융단폭격이라도 하는듯이 정신을 못차리게 만든다. 오랜 군사정권과 그 뒤를 이은 독선적 문민정권 하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난 부패한 관료, 부도덕한 정치인, 족벌체제로 거대왕국을 이룬 재벌들이 저지르는 한바탕의 참사들이 우리 모두를 허탈하게 만들고 있다. 억도 모자라 조 단위를 넘나드는 부정 앞에서 우리는 또다시 「지존파」니 「막가파」니 하는 그야말로 막가는 사회의 황폐한 장면을 접하지나 않을까 두렵다.

5,000년 민족사에 이렇게 불행하고 기묘한 시대가 또 있었을까. 북의 외교관들은 마약밀매에 혈안이 되어 있고, 남의 장사꾼들은 곰발바닥을 찾아 다니는 밀엽꾼이 되어 온갖 국제적 망신을 당하는 이런 시대가 과연 있었을까. 상호대립과 증오에 국력의 대부분을 쏟아붓고 황폐해질대로 황폐해진 심성으로 살아가는 이런 시대가 말이다.

일찍이 장지연 선생은 한일합방이 되자 「시일야 방성대곡」, 즉 『오늘이야말로 목놓아 울어야 할 때』라고 하였지만, 지금이야말로 남북의 모든 인간들이 땅에 이마를 묻고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해야할 때가 아닐까. 오호! 정말 통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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