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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JAZZ 관련상품 ‘봇물’(우리문화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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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JAZZ 관련상품 ‘봇물’(우리문화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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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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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 분위기 차용/카페·댄스·립스틱에 드라마·패션까지레코드점 한구석에서 먼지만 쌓여가던 빌리 홀리데이의 앨범 「새틴옷을 입은 여인(Lady In Satin)」. 이 앨범은 어느날 갑자기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며 판매 차트 수위를 기록했다. 앨범 수록곡 「당신을 원하다니 내가 어리석지(I’m A Fool To Want You)」가 한 여성의류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면서, 폭발적으로 빛을 본 것.

90년대 재즈 열풍은 마니아들만의 음악으로 인식돼 온 재즈를 대중 음악으로 변모시켰다. 뿐만 아니다. 재즈를 중심으로, 온갖 관련 상품들도 선보였다. 재즈바, 재즈카페, 재즈 댄스 , 드라마 「째즈」, 립스틱 「재즈 와인」 등 온갖 관련 상품이 봇물을 이뤘다.

재즈 이미지 광고는 곧 하나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재즈적인 분위기」를 뜻하는 「재지(Jazzy)하다」는 말이 잡지와 광고 카피를 도배했다.

재즈 붐은 또 패션의 복고풍을 불렀다. 허리선을 강조한 긴 재킷과 통좁은 바지, 중절모 등 50년대 재즈 뮤지션의 옷차림을 모티프로 한 의상이 갑자기 각광 받았다. 이른바 「재즈 패션」이다.

왜 광고나 패션이 재즈를 가장 적극적으로 이용했을까?

광고와 패션은 시류에 민감한, 이른바 이미지 산업의 대명사. 몰아 닥치는 재즈 열풍 속에서, 이들 업계가 재즈 이미지의 가능성을 경쟁적으로 차용한 때문. SBS가 방영했던 드라마 「째즈」가 내세운 도시의 우울한 서정은 또 다른 좋은 예다. 전편을 지배했던 고급스러우면서도 약간은 퇴폐적인 분위기. 이는 그러나 재즈의 극히 일부분일 뿐,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고 애호가들은 지적한다.

재즈 열풍에 힘입어 발매된 많은 컴필레이션(인기곡 모음집)음반들, 그러나 정작 재즈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최악의 앨범이라는 평이다. 『진짜 재즈 애호가들 중에는 요즘의 재즈 열풍과 일부러 거리를 두려는 사람들이 많다』 한 재즈 마니아는 이렇게까지 말했다.

그러나 재즈 열풍에 부정적인 측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때맞춰 재즈 전문 방송 프로그램이 잇달아 생겨났고, 해외 유명 재즈 뮤지션들의 내한 공연도 늘어났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재즈의 자유로움이 젊은이들에게 공감을 얻은 것 같다. 질서나 규칙같은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이완된 상태를 바라는 심리가 그것이다』 90년대 재즈 열풍을 바라보는 한 광고회사 관계자의 말이다.

재즈 문화가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아직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들은 덧붙인다. 『재즈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업료를 지불해야 한다. 최근의 재즈 열풍은 수업료를 지불하지 않고 분위기만 즐기려는 형국이다』 재즈 이미지 남용을 경계하자는 것.<김미경 기자>

◎문학·출판속의 재즈/즉흥… 변주… 허무… 불협화음…/시·소설 내용·형식에 잇단 도입

재즈는 90년대 우리 문학, 출판물의 BGM(배경음악)이 됐다.

작가 하재봉씨는 그의 소설 「쿨 재즈」에서 이렇게 말한다.

「기분이 좋을 때 나는 『쿨』하고 소리친다. 정말 쿨한 세상에 살고 싶다. 쿨 재즈는 오랫동안 나의 문학적 성감대였다. 나는 쿨 재즈를 들으며 이 답답하고 더러운 세상을 헤쳐나갈 힘을 얻는다. 나는 가치의 이중성이 혼재하는 이 세상 속을 쿨 재즈를 들으며 걷고 싶다. 이 책은 그 결과이다. 그리고 독자들도 나처럼 쿨해졌으면 좋겠다」.

그의 말처럼 요즘 젊은이들은 기분이 좋으면 실제로 『쿨』이라고 외친다.

시인 유하씨는 「재즈1」이라는 시에서 「운명이여, 나를 내버려두게나/ 즉흥적으로 이 세상에 와서/ 재즈처럼 꼴리는 대로 그렇게 살다 가리니」라고 재즈를 빌어 세상을 조소하기도 한다.

소설이나 시의 내용뿐 아니라 형식에서도 「재지(jazzy)한」 수법을 사용하는 글쓰기는 이제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다. 장정일씨는 그것을 명시적으로 밝힌 아마 최초의 작가다.

『소설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에서는 불규칙 화음과 반복되는 장식음의 변주, 즉흥적인 돌발성 등을 특징으로 하는, 재즈음악과 같은 글쓰기를 실험했다』고 그는 말한다. 예를 들면 「그가 퇴근할 즈음 시계는 열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했을 때 아홉시 뉴스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는 식이다. 독자는 당황스럽지만, 『세계는 진실보다 악의가 없는 거짓말로 이루어져 있다』는 작가의 의도를 듣고는 오히려 느긋해질 수도 있고, 재즈를 들을 때처럼 일순 정신을 집중할 필요도 느낀다.

출판에서의 재즈 붐은 더하다. 「재즈」를 간판으로 단 각종 책들이 매년 10여종 이상 쏟아지고 있다. 「재즈 섹스」라는 소설이 있는가 하면 「재즈 카페」만 모아 소개한 동명의 책도 나왔다. 일본작가 무라카미 류의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재즈 블루」로 이름이 바뀌어 출간되기도 했다.

역시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한국의 재즈 붐에도 한몫을 했다. 소설가가 되기 전 실제로 재즈카페를 운영했던 그는 작품 곳곳에 재즈를 「틀어」놓는다. 그의 작품 「일각수의 꿈」에서 남녀주인공은 이렇게 대화한다. 『나는 인생을 갉아 먹는 피로감에 대해, 아니면 인생의 중심에서부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피로감에 대해, 백가지 정도로 설명할 수가 있는 것이다…. 「당신 알토 색소폰 불 줄 알아요?」 「아니」하고 내가 말했다. 「찰리 파커의 레코드는 가지고 있어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도저히 찾을 수 있는 상태도 아니고…」』

재즈와 허무가 이렇게 만나는 것이다. 93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미국의 토니 모리슨의 소설 「재즈」가 뒷골목 흑인들의 어두운 사랑을 그린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경계해야 할 것은 거품이다. 문학평론가 정과리씨는 유하의 시를 해설하면서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재즈 그 자체가 아니라 재즈 카페이다. 재즈 카페가 생길 정도로 재즈는 사방에 자욱하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북적대며 재즈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시며 「허송세월」(유하의 시구절)하고 있다』고 말했다.<하종오 기자>

◎전문가 진단/성기완 대중음악 평론가/본질과 동떨어진 한국재즈

「재즈처럼 편안한 패션 정장」

위 구절은 어느 선전문구에 등장하는 말이다. 「재즈」와 「편안함」과 「패션」과 「정장」을 연결시키고 있는 이 문구는 최근 한국 땅에 때 아니게 불어닥친 재즈 열풍의 본질을 매우 간명하게 집약시켜 놓고 있다. 「―처럼」이라는 직유의 조사에 의해 비유의 항목이 된 「재즈」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편안함」의 느낌을 불러일으키는데 사용되는 비유항으로 대상화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편안함은 「패션」으로 모아진다. 결국은 「패션 정장」이라는 독특한 패션 개념이 탄생한다. 이러한 스타일은 록음악처럼 아주 공격적이고 반항적이지도, 클래식 음악처럼 구닥다리도 아닌, 편안하고 어른스러우면서도 감각적이고 화려한 것으로 「여겨지는」 재즈의 특성에서 하나의 전형을 발견하고자 한다.

재즈를 둘러싼 우리 의식의 실상은 당대 중산층의 허위의식과 연결되어 있다. 재즈는 우리에게 마치 『모든 것을 잊어요.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당신 몸을 맡겨 봐요』라고 권유하는 섹시한 목소리의 여자(남자)와도 같다. 에로틱하고 퇴폐적이며, 동시에 매혹적인, 검은 장갑을 낀 그 손은 삶의 고통을 슬쩍 가려준다. 그리고 「감각적으로」 우회하도록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우회」를 통해 삶의 근본 문제에서 조금 자유로워진 새로운 개인, 혹은 그 고통을 슬쩍 웃어넘기는, 유머러스하고 멋있지만 「어딘지 외로워보이는」 새로운 인간이 탄생하는 것으로 여긴다. 착각이고 허위이자 일종의 도착이다.

이때 재즈는 소품으로 전락한다. 거기에는 재즈의 본질이 완전히 망각되어 있다. 그것이, 슬프지만, 우리에게 불어닥친 재즈 열풍의 본질이다.

실제로 생각했던 것보다 재즈 음반의 판매 역시 저조하다. 몇몇 이른바 컴필레이션 앨범들만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재즈 수요」라는 것이 허수에 불과했다는 뜻이다.

재즈 열풍이 재즈 불모지에 가까왔던 한국에 「재즈」라는 개념을 정착시키는 데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어느 정도 「재즈 시장」이 형성된 감도 없지 않다. 이러한 양적 성장이 「질적 변화」를 동반하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어쩐지 길을 잘못 든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중산층의 허위의식에 타깃을 맞추는 것만으로는 재즈의 본질에 접근하기 힘들다. 재즈는 실제로 그렇게 「편안한」 음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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