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초 안에 터지지 않으면 돌아간다』. 방송사 프로듀서들이 즐겨 쓰는 말이다. 30초 안에 볼거리가 나오지 않으면 시청자는 리모콘으로 채널을 바꿔버린다는 것이다. 이 말은 지루한 것을 못참는 요즘의 시청자들의 취향을 말해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그렇지만 시청자들은 채널 스위치 뿐아니라 볼륨 스위치도 끊임없이 조작하고 있다. 채널마다 제 멋대로 변화하는 음향 때문이다.
먼저 드라마를 보자.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는 대부분의 시청자가 무의식적으로 음량을 키우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 배경음악이 깔리면 갑자기 소리가 커지고 이에 놀란 시청자는 볼륨을 낮춘다. 이뿐이 아니다. 야외녹화를 후시 녹음하는 경우 그림과 음향이 제대로 맞물리지 않는다. 게다가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음향과도 제대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보도프로그램에서는 현장 인터뷰가 들어가는 경우, 주변 소음과 음성이 뒤섞여 대화 내용을 알 수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쇼프로그램에서는 진행자의 자극적인 목소리, 천차만별의 음향 특성을 보이는 음악, 오빠부대의 환호성이 한데 어우러져 음향의 광란상태가 연출된다. 이를 현장감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산만한 음향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듯 싶다.
광고가 시작되면 그야말로 「20초의 지옥」이 시작된다. 들쑥날쑥한 음량, 자극적인 음향으로 치장된 광고는 시청자의 혼을 빼놓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이 때가 되면 많은 시청자들은 아예 볼륨 조정도 포기하고 다른 채널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그러나 채널을 돌리면서 그가 확인하는 것은 그의 귀가 편안히 쉴 곳은 아무데도 없다는 사실뿐이다.
80년대초 컬러시대가 열린 이래, 우리 방송은 여러 측면에서 꾸준히 기술개발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간의 기술개발은 주로 영상부문에 치우쳐 음향부문이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져 왔다. 이점은 거대 방송사인 KBS내에 방송음향기술을 전담하는 연구팀이 없는 것에서도 어느 정도 확인된다.
이러한 불균형상태는 방송 경쟁력의 확보와 질 높은 방송 서비스의 제공이라는 관점에서 조속히 개선되어야 할 일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방송음향을 전담하는 연구기관의 설립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이 기관으로 하여금 방송음향 전체의 통일성과 안정성 및 유기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술 표준」의 확보, 각 프로그램의 성격과 특성에 맞는 음향의 개발, 음향 관련 기자재의 개발, 음향제작 분야의 전문화 및 조직화, 영상과 음향 사이의 유기적 조화, 전문 인력의 확보 및 양성 등을 담당하게 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이 분야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현수준에서 실현가능한 최선의 음향을 끌어내려는 제작자들의 의지와 노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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