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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 안주면 기업 못해요”(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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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 안주면 기업 못해요”(사설)

입력
1997.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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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원짜리 공장을 짓는데 3,000만원의 뇌물이 들었다는 한 중소기업인의 고발(한국일보 2월15일자 31면)에 접하면서 대도 조세형이 떠올랐다. 세상이 온통 큰 도둑 작은 도둑들로 가득하다는 막다른 생각 때문에 까맣게 잊었던 이름이 떠오른 것이다.83년 봄 구치소를 탈출해 6일동안 서울시내를 활보했던 그는 손 큰 도둑이라고 해서 대도란 별명을 얻었다. 그는 재판과정에서 자신을 좀도둑으로 규정하면서 대도는 자신에게 털린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라고 항변했었다. 부총리, 국회의원, 종합병원장 등의 집에서 그가 훔친 물건중에는 당시 시가로 1억원이 넘는 5.6캐럿짜리 물방울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시계까지 있었다. 민심을 고려한 검찰이 피해액을 줄여 발표하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한보그룹 정태수 총회장에게서 몇억원씩을 받고 천문학적 액수의 특혜대출 압력을 가한 사람들을 큰 도둑이라 한다면, 제이슨산업 이영수 사장에게서 돈을 뜯은 사람들은 작은 도둑임에 틀림 없다. 수출 불합격품을 즉시 합격품으로 둔갑시켰으니 마술사라 하겠지만, 절대로 뇌물을 주지 않겠다고 맹세했다는 이씨에게서 돈을 빼앗아 간 것이나 다름 없으니 도둑이 아니고 무엇인가.

기업인 200여명이 참석한 조찬세미나에서 그는 울먹이며 『아침에 눈을 뜨기가 무서웠다』고 고백했다. 경찰관서들은 다달이 찾아와 마치 이자돈 받아가듯 당당히 「월사금」을 챙겨갔고, 소방관서는 기업인의 가슴에 불을 지르고 돈을 뜯어가는 조직이라고 표현했다. 권력층의 전화 한마디에 몇천억원을 몇천원 주듯 한 은행에서는 자금을 빌려달라면 『지점장을 한번 만나보시죠』했다고 한다. 관공서 뿐 아니라 이 사회 구석구석 썩지 않은 곳이 없다는 적나라한 고발이다.

그는 주로 문민시대 이전의 사례들을 중심으로 털어놓았다. 그러나 강연후 질의응답 형식을 통해 참석 기업인들은 최근 세무서에서 당한 횡포 등을 털어 놓으며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분개했다고 한다. 기업인들의 이런 체험담들은 별로 쇼킹한 것이 아니다. 퇴근시간 뒷골목 소주방에서 흔히 듣는 얘기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도 화제가 되는 것은 당사자가 공식석상에서 고발할 만큼 심각해졌고, 그것이 개혁과 부패척결을 높이 쳐든 문민정부 밑에서 한치도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투자의 4분의 1에 가까운 돈이 뇌물에 쓰인다면 우리 경제의 장래는 볼 것도 없다. 국제경쟁력이니 세계화니 하는 화려한 슬로건들이 부끄럽다. 기업들이 앞다투어 외국으로 탈출하는 이유를 알겠다. 기름(뇌물)을 치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다는 기업인들의 하소연이 과장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바늘도둑도 없는 거울같은 사회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국가경제를 좀먹는 비열한 도둑들이 없는 곳에서 살고 싶은 것은 영원한 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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