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 9월에 있었던 강릉무장공비 침투사건때 이광수가 포로로 잡힌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만일 그가 잡히지 않았으면 북한은 공비침투를 무조건 남한의 자작극이라고 우겼을 것이고 침투사건에 대한 사과나 유감표시는 물론 사건 자체를 시인하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황장엽은 편지까지 써 북한의 주체사상이 얼마나 허구이며 얼마나 잘못 이용되고 있는가를 소상히 밝히고 있다. 「위대한 장군님 김정일」의 허상을 드러냈다. 주체사상의 발상자이고 최고권위자인 그가 북한 주체사상을 허구라고 말한 것은 북한인민들은 물론 상당수의 남한 젊은이들을 주체사상의 맹신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북한의 정체를 밝히고 허구성을 드러냈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남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남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이광수가 체포됐을 때 그가 내보인 태도다. 그는 동료들의 후퇴길을 터주기 위해 거짓증언을 했고 한국군은 이광수의 말을 그대로 믿어 엄청난 혼란을 가져왔던 것이다. 이광수의 혀와 머리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심문관이 없었다.
황장엽은 이광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공산주의 이론가요 주체사상의 아버지다. 그가 설명하는 망명이유, 그가 펴는 주체사상의 허구성의 내용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심문관이 필요하다. 그를 단순한 변절자로 본다든지 그의 말을 한국식으로 받아들여 북한내부를 잘못 판단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황장엽의 망명동기는 지성인의 고민에서 싹텄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는 학자로서, 지성인으로서 프로메테우스적인 질문을 늘 해왔을 것이다. 『아마도 이것보다는 나은 것이 있을거야』라고 질문하는 것이 지성인의 속성이다. 일생의 업적을 스스로 불살라 버리면서 추구하려 했던 『이것보다는 좀더 나은 것이 있을거야』라는 질문이 조금은 이뤄질 수 있도록 그의 진심을 들어보고 그 방법을 찾아 보는 것이 생사를 걸고 망명을 결심한 이 노인을 위로하는 길이다.<논설위원실에서>논설위원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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