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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비방­도발’ 북의 카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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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비방­도발’ 북의 카드는…

입력
1997.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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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극” 비방후 침묵,도발가능성 적어/권력정비 가속화·대중압박 강화할듯황장엽의 망명사건을 맞은 북한의 다음 수순은 무엇인가.

북한의 앞으로 예상되는 대남 조치로는 침묵, 「반공화국 소동」 등의 간헐적 모략비방, 그리고 도발 등 세가지가 꼽힌다. 그 중에서도 최소한 2월16일 김정일 생일까지는 북한이 목소리를 높이지 못 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실제로 13일 새벽 대외용인 관영 중앙통신을 통해 이번 사건을 납치극이라고 비방했을 뿐 그 뒤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권력정비의 가속화, 대외적으로는 대중 외교압박 강화책 등이 예상된다. 북한은 가을로 예상되는 김정일의 권력승계를 앞두고 이번 55회 생일행사를 위해 각종 결의대회 개최 등 대대적인 분위기 조성작업을 해왔는데 황장엽 망명 사건으로 판이 깨지기를 원치 않고 있다.

황의 망명은 북한으로서는 중앙통신 보도대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며 국가적 망신이다. 그러므로 정말 북한 주장대로 황의 망명사건이 남한의 「납치극」이라면 북한은 강력하고 구체적인 대응조치를 취해야 한다. 정황상 황이 자의로 망명한 것이 확실하고 대응 조치를 취해봤자 설득력을 얻기 힘든 상황에서 북한은 마냥 말로만 「납치극」이라고 떠들기도 힘든 것이다.

지난해 미그기를 몰고 귀순한 이철수 대위의 경우 북한은 그의 귀순을 인정한 뒤 「혁명의 배반자」라고 몰아붙였다. 그러나 황은 배반자로 몰기에는 너무 거물이다. 북한이 스스로 주체사상의 몰락을 자인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처럼 곤란한 사건이 발생하면 대개 침묵해왔다.

그래서 사건 발생 직후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나왔던 중앙통신 보도도 중국에 대한 압박용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앞으로 황을 소환하거나 최소한 한국행을 막기 위한 중국과의 공식·비공식 접촉에 주력할 것이 확실하다. 북한은 15일 중국에 대표단을 파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중국통인 송호경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의 활동이 주목된다.

그래서 잠수함 사건으로 국제적 망신을 당한 북한이 또다시 대남 도발을 시도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정부 당국자들의 판단이다.

이번 사건은 북한 내부적으로 권력체제 정비를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김정일은 최고 직책승계를 전후해 자기 또래의 신진세대를 중심으로 대대적 권력 재편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돼왔다.

이런 상황에서 황이 맡았던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나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 사회과학자협회 위원장 등 핵심 직책들이 한꺼번에 공석이 돼버린 것이다. 또 외교와 사상 방면에 거미줄처럼 깔려 있는 황의 인맥들에 대한 정리방법도 김정일의 당면과제가 돼버렸다.<김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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