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이 흉흉하다. 안팎으로부터 도전의 격랑이 휘몰아치고 있는데 우리는 격앙과 망연자실하며 그저 두손을 놓고있는 형국이다. 국민들도 분노와 허탈 자조를 넘어 정치적 허무주의에 빠져있는 듯하다.이런가운데 김영삼 대통령은 한보사태에 대해 침묵으로만 일관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그의 무거운 침묵이 칼보다도 무섭다고 하나 대통령의 침묵을 무서워하는 국민들도 거의없다. 오히려 국민들은 대통령의 침묵에 대해 더욱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이번 한보사태로 문민정부 정통성의 근간인 도덕성과 신뢰성은 완전히 상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자는 식 병 신 중에 국가를 지탱해주는 으뜸이 믿음(신)이라고 했다. 대통령의 침묵은 그 믿음의 기초를 점점 침하시키고 있다. 김대통령은 기독교신자다. 과연 한보사태에 대한 처리가 그의 믿음과 양심에 어긋남이 없는지 묻고 싶다. 여권핵심부는 「핵심」을 보호하기위해 「깃털」만 몇개 뽑았다는 국민들의 팽배한 불신의 늪을 무엇으로 덮으려하는 것일까.
김대통령은 한코의 그물로 열마리의 새를 잡으려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시점에서 열마리의 새를 잡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물의 코를 끊어먹을만큼 강한 「배후인물」을 밝혀내지 않고서는 한보사태는 퇴임이후에도 그의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 건이 될 것이 분명하다.
논어에 소장지우라는 말이 있다.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끼리의 자중지란을 말한다. 이번 한보사태에선 군사쿠데타 동지못지않게 문민정부의 공신들이 서로 헐뜯는 목불인견의 꼴을 국민들은 목도했다. 우선 나만 죽을 수 없다는 「깃털론」에서 「음모설」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여기에 정부의 책임있는 고위인사가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언급했을 정도이니 문민정부가 그렇게 증오하고 차별화하려했던 군사정권때와 무엇이 다른지 한심스러운 지경이다.
구인의 높은 산을 쌓는데 최후의 한짐 흙을 빼고서는 이룰 수 없다는 옛 철언도 있다. 한보사태에 대해 공명정대하고 투명한 처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문민정부가 그동안 쌓아온 개혁의 탑은 한낱 역사의 바벨탑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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