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기업 임원들은 국제전화 받기가 겁난다고 한다. 노동법개정 파문에 이어 한보사태가 터지면서 해외교포나 외국기업인들로부터 듣기 거북한 질문세례가 쏟아지기 때문이다.「한국이 망하는 것 아니냐. 당신 회사는 괜찮으냐. 여기서는 한국이 꼭 멕시코짝이 나는 것처럼 야단들이다. 언론들도 한국을 제2의 멕시코로 보는 시각에서 한국관련 기사를 보도하고 있다. 그동안 용케 경제기적을 이뤄냈지만 더이상의 발전은 벽에 부딪혔다는 시각이 퍼져 있다」
해외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면전에서 같은 소리를 듣게 돼 더욱 곤혹스러워한다고 한다.
황장엽 북한노동당비서의 망명사건이 생긴 후에는 「코리아에서는 왜 예측불허의 사건들이 자주 터지느냐」 「북한이 붕괴하면 남한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 등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덧붙여졌다.
우리에겐 호들갑처럼 들릴지 몰라도 전혀 턱없는 얘기는 아니다. 실제로 외부에서 우리를 보는 눈은 비관적이고 경멸적이다. 도통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 눈치다.
이 땅의 최근 상황은 마치 거대한 격량을 이기지 못하고 침몰하는 난파선을 보는 듯 하다.
한보사태의 홍수속에 묻혔지만 일본의 엔저 관련 외신에 충격을 받은 경제인이 적지 않다. 95년이후 계속된 엔저로 일본상품들이 국제시장에서 엄청난 가격경쟁력을 발휘하자 환호를 질러야 할 일본경제인들이 오히려 일본경제에 역효과를 가져다준다며 대책수립을 주장하고 나섰다는 소식이었다.
80년대후반 엔고로 경쟁력을 상실할 위기에 처하자 온갖 방법을 모색하며 부족한 경쟁력을 착실히 다져와 달러당 70∼80엔까지 견딜 수 있게 된 것이 일본경제다. 일본경제계는 이제 거품이 거의 빠지는 순간에 엔저가 일본경제의 체질을 다시 약화시킬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엔고로 우리상품이 어부지리 가격경쟁력으로 수출이 잘 될때 엔고가 끝난 이후를 걱정한 사람이 있었는가. 오히려 쌓여가는 외화를 줄이려고 국민들에게 해외여행을 부추기고 수입문호를 활짝 열어제쳤다.
80년대 일본에 밀려 2등국가로 전락하는게 아닌가 우려를 자아냈던 미국경제가 각 산업분야에서 엄청난 다운사이징과 기술개발 투자, 정부와 노사의 경쟁력회복노력 덕택에 90년대들어 정상의 위치를 회복했다.
잘 나갈 때 그리고 어려울 때 그 이후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준다.
노동법 개정파문으로 새해벽두부터 홍역을 치른 우리 경제는 한보사태로 빈사상태에 빠져있다. 사건 자체가 구조적인 부정부패의 덩어리로 규정지어지면서 온 나라가 걷잡을 수 없는 회오리에 휘말리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광풍에 나라의 모습이 거푸집처럼 위태위태해 보인다.
흔들리는 나라를 곧추 세우기 위해 진정한 애국심이 필요한 때다. 한보사태와 관련된 사람이 당당히 책임을 지는 것도 애국심이요, 사정당국이 의혹이 남지 않는 투명한 수사를 하는 것도 애국심이다. 통치자가 철석같이 믿었던 가까운 사람이라도 연루사실이 밝혀지면 피눈물을 머금고 단죄하는 것 또한 위대한 애국심일 것이다.
이제 한보사태 이후, 황장엽 망명사건 이후를 생각하고 나라를 추스려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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