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남녀공학 고등학교의 이야기다. 고등학교 과목중 유일한 선택과목이라고 할 수 있는 제2외국어를 이 학교에서는 학생 개인이 선택할 필요가 없다. 남자는 독어, 여자는 불어로 정해져 있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편의상 그렇게 나누는 것이란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또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 고1 신입생을 대상으로 3월중 실력평가시험을 계획하고 있는데, 시험범위는 고1 과정이라고 한다. 중3 졸업생들은 각종 학원에서 이미 고1 과정을 대부분 배웠고, 학교에서는 이를 전제로 평가한단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것은 그에 해당하는 교육을 받기 위한 것인데, 학원에서 배우는 것을 전제한다니 도대체 학교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오직 대학만을 향한 사교육의 열풍 속에서 공교육은 제자리를 내주고, 아이들은 무엇이 더 옳은 것인지 판단할 수 없게 된다.
이같은 일은 초등학교, 중학교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귀여운 초등학교 1학년생들은 입학 첫날부터 알림장을 적을 줄 알아야 한다. 학교 들어가기 전엔 맘껏 뛰놀고, 학교 가서 하나씩 글자를 배우면 된다고 여유 부리던 부모들과 아이들은 학교 제도와의 첫 만남에서부터 당황하게 된다. 중학교에서는 한 번도 배우지 않은 피아노, 바이올린 연주가 음악 실기평가에 들어가 있다. 공교육이 사교육의 평가단위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 인성이나 도덕 교육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나날이 버릇이 없어진다고 한탄하며 학생들은 언제 선생님이 우리들에게 가르쳐 준 것 있느냐고 대들고 무시한다.
이제 새학년이 시작된다. 교육의 기초가 흔들리고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회에서 미래를 기대하기는 힘든 일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제자리를 벗어나 있는 것은 교육만이 아니라 정치도 경제도 모두 제자리에서 탈선하고 있다. 도덕의 기초가 무너지고 정상과 비정상이 전복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위기 상황에서 그래도 우리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은 교육밖에 없는 것 아닐까. 지식과 경쟁력이 문제가 아니다. 옳고 그름을 배우고, 잘못을 부끄러워할 줄 알며, 남을 배려하고 도와줄 수 있는 교육의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천천히, 조금만 더 생각하며, 교육을 제자리에 돌려 놓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