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폐의 뒷면서 건져낸 진실「혼돈을 향하여 한걸음」의 저자 최인석은 최근 문단에서 날이 갈수록 희귀종이 되어가는 작가에 속한다. 많은 작가들이 장인적 문필가나 이야기 흥행사로 자족하는 듯한 항간의 추세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정치적, 도덕적 주제의 자리를 탐색한다.
그의 소설집에 실린 다섯 편의 중편 어디서나 독자를 사로잡는 것은 세상에 대한 완벽한 절망이며, 세상과의 불화를 고집하는 강인한 부정의 기세다.
그는 세상이란 어디 가나 「똥통」이라고 말한다. 그의 작품에 그려진 삼청교육대나 매춘굴같은 공간은 그처럼 절망적으로 인식된 세계의 축도들이다.
최인석이 보여주는 도덕적 치열성의 저변에는 사회 변혁에 대한 믿음으로 충만했던 지난 시대의 경험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는 어느 결에 그것을 낭만적으로 또는 모멸투로 회고하는 버릇이 들었지만, 그의 소설은 변혁에 대한 희망이 사람들에게 가져다 준 충일한 삶의 순간을 기억한다. 그것은 유토피아의 황홀한 임재를 예감한 순간이다. 그것이 비록 덧없이 사라졌다 해도 그 체험은 어떠한 계시 못지않게 운명적이다. 유토피아는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사람들이 고난의 한가운데서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처럼 삶의 현장 너머를 끊임없이 욕망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숨은 길」의 화자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그리운 미망」이라 부르는 노동운동가 출신 여성에게, 지식인들한테 배신당한 룸펜의 이름으로 난폭하게 응징하려 한다.
유토피아에 대한 동경이라면 낡은 이야기가 아닌가. 하지만 최인석의 소설에는 친숙함을 상쇄하고 남을 만한 극렬함이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그의 유토피아 의식이 퇴폐에 이끌리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가장 노릇을 팽개치고 방탕하게 살다간 아버지와 「갈보―예인」의 이중성을 지닌 아버지 정부의 사연을 중심에 두고, 일탈을 통해 열리는 「극락」이라는 인식을 펼치고 있는 표제작에서 보듯이, 그는 패륜적이고 범죄적인 삶의 이면에서 유토피아에 대한 갈망을 읽어낸다.
그가 하층민들의 황폐한 삶에서 통찰한 퇴폐의 진실은 「혼돈」의 극락이라는 인식에 이르러 한층 고양된 표현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퇴폐의 황홀한 마성을 이야기하는 최인석 소설의 어조는 진지하고 열정적이다. 때로는 대상과의 거리를 잃어 추상적인 설교를 닮는 약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표현하는 광기 어린 도저한 부정은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 요즘은 마음을 숙연케하는 소설도 흔치않은 세상이다.<황종연 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황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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