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북경)의 한국공관에 보호중인 북한노동당 비서 황장엽이 남한으로의 망명 동기와 목적을 적은 자술서는 북한체제의 핵심원로이자 노학자의 고뇌어린 참회록이자 고백서다. 민족을 불행에서 구원하기 위해 남측의 인사들과 협의하기 위해 결행했다는 망명결심은 마치 48년 온갖 반대를 물리치고 남북 정치협상회의에 참석했던 김구 선생의 북행처럼 결연한 의지를 보여준다.그가 망명결행에 대해 「나만 미쳤겠는가」하는 것은 차라리 절규다. 그는 50여년간 김일성 부자를 섬겨온 충실한 노동당원이었다. 그러나 북한체제의 반민족적, 반인도적 폭거에 배신감을 느끼고 가족마저 등지는 등 모든 것을 버리면서 마지막 여생을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바치겠다고 몸을 던진 것이다.
자술서에서 황은 북한 독재정권의 만행에 대한 규탄과 함께 남한의 행태에 대해서도 준엄한 질책을 하여 눈길을 끈다. 즉 남북이 통일을 한다면서 서로 적으로 간주하고 있고 특히 북한이 상대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한 것과 노동자 농민들이 굶주리고 있음에도 이상사회건설 운운하고 있는 것은 제정신이 아닌 짓들이라고 고발한 것이다. 아울러 북녘동포들이 굶주리고 있는데도 이를 외면한 채 시위만 벌이는 남한의 일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황이 벽두에 50여년간 몸담아 온 노동당과 김일성부자에게 감사의 정이 있음을 밝히고 북한이 경제난을 겪고 있지만 결코 붕괴될 위험이 없다고 한 것은 원로공산당원으로의 자긍심과 함께 가족들의 안전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는 북한정권수립 이래 단 한차례의 숙청도 당하지 않고 김일성·김정일체제 운영의 모든 것을 권력주변에서 직접 목격하고 참여했던만큼 장차 서울로 올 경우 기대되는 북한의 기밀은 너무나 많다. 무엇보다 당장 관심을 모으는 것은 그가 망명기도전 모 인사에게 남한체제안에 수만여명의 고첩과 동조자들이 있다고 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80년대 후반 이후 남한의 안보태세는 날로 해이되어 거물간첩 이선실이 수년간 버젓이 서울에 거주하며 간첩 활동을 했으며 또 아랍인으로 위장했던 간첩 정수일은 매일 북의 지령을 받는 고첩들이 수백명 있다고 하여 파문을 일으킨바 있다. 황의 말대로 정부 등 각 기관에 그토록 많은 간첩과 동조자들이 숨어 있다는 것은 국가안위에 관한 중대한 문제로서 반드시 규명, 색출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황의 망명요청은 우리의 문제요, 남북한과 중국의 문제일뿐 아니라 세계적인 관심사가 됐다. 미국 등 세계의 여론이 인도주의적 원칙과 국제관례에 의한 해결, 즉 망명 허용을 강조하고 나서고 있는 만큼 정부는 인내를 갖고 중국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난처한 중국의 입장을 고려, 시간이 걸리더라도 침착하고 끈기 있게 인도교섭을 벌여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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