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정치와 돈/어느 중진의원의 정치자금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정치와 돈/어느 중진의원의 정치자금

입력
1997.02.15 00:00
0 0

◎“쓸곳은 많고 손 벌릴 수 밖에…”/지구당 운영비·경조비 등 한달 5,000만∼6,000만원 지출/그러나 공식수입은 세비와 쓰다 남은 약간의 후원금뿐/친지도움으로 부족 메우지만 진짜 큰 힘은 비선조직과 기업체의 ‘떡값’/물론 반대급부가 따라야…/덩치 크기로는 대출·입찰 커미션이 최고/몇건하면 임기내 걱정 끝/불법인줄 알지만 정치적 야망때문에 씀씀이를 줄일수도 없고…중진의원으로 분류되는 신한국당 Q의원은 월 4,800만∼6,000만원을 쓴다. 사무실 유지비, 인건비, 각종 행사비, 지역구민 경조비 등 지구당 운영비가 2,000만∼3,000만원으로 가장 큰 몫을 차지한다. 또 개인활동비인 식비, 교통비, 해외여행 경비, 접대비 등으로 2,000만원이 들어가고 집에도 300만∼500만원의 생활비를 갖다줘야 한다. 「앞날」을 위해 열어 놓은 「OO연구소」라는 외곽사무실 운영에도 500만원 정도가 든다.

그의 공식적인 수입은 월평균 550만원꼴인 세비와 지난해말 후원회 행사를 열어 모금한 1억원이 전부인데 『후원금은 지난달에 거의 바닥이 난 상태』이다. 나머지를 어떻게 메우느냐는 물음에 그는 『여기저기서 도움을 받을 수 밖에…』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외곽사무실 운영비 절반은 다달이 주는 사람이 있어요. 사업하는 친구라고 해 둡시다. 또 알만한 기업에서 부정기적으로 갖다 주는 돈도 있고 고교·대학 동문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경기침체 때문인지 결제에 7∼10일이 걸리는 당좌수표를 주는 사람도 있고 아예 접촉을 피하는 친구도 있어 사정이 어렵습니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물론 그것말고도 밖에 드러낼 수 없는 지역구내 비선 후원조직도 가동하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많은 의원들이 공식적인 후원회와는 별도로 재력있는 지역유지 20∼30명으로 이런 모임을 만들어 두고 있지요. 여기서 다달이 또는 해마다 일정액을 거둬 줍니다. 연간 후원금 모금상한 1억5,000만원을 넘어가는 돈은 이런 식으로 고정적으로 만들어 쓰고 있어요』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의원들은 행정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해 「전주」의 사업편의를 봐 주거나 지방선거 후보로 공천하는 등의 반대급부를 제공한다. 유착관계가 불가피해 진다.

『가끔씩 대기업의 돈도 받지만 그럴 때는 의원들 사이에 불문율이 있지요. 단기간에 급성장한 기업의 돈은 받아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우리 경제구조상 급성장한 기업의 돈은 한보의 경우처럼 뭔가 함정을 갖고 있게 마련이지요』

그는 또 『그렇지 않은 대기업의 돈이라도 부사장이나 전무가 돈을 갖고 오면 돌려 보냈다가 기업주가 다시 찾아오면 그때서야 받는 의원도 많다』고 귀띔했다. 그래야 비밀유지가 쉽고 액수도 더욱 커진다는 것. 이렇게 받는 대기업의 돈은 모두 기업 비자금으로 「조건」이 붙어 있지 않아 의원들이 가장 선호한다. 이른바 「떡값」이다. 그러나 이를 받은 의원들이 그후 대기업의 로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음성적 정치자금 가운데 가장 덩치가 큰 것은 뭐니뭐니해도 의원들이 기업의 은행대출이나 대형공사 입찰에 개입해 챙기는 커미션이다. 한보사태에서도 드러났듯 대기업의 대출커미션은 한번에 수천만∼수억원에 이른다. 또 국회 상임위가 심의하는 100억원을 넘는 정부발주 공사의 낙찰대가도 이에 못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몇건만 잘하면 의원들은 4년 임기내내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커미션 액수만큼이나 위험부담도 커 의원들이 직접 정부관계자나 은행장, 단체장 등을 1대 1로 만나 은밀히 청탁을 행하는 게 보통이다. 이와 함께 어떤 의원은 자신이 특정 기업의 「약점」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은근히 흘려 『국회에서 거론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그 기업의 돈을 받는 경우도 있으며 이때도 사안에 따라 액수가 억대에 이르기도 한다고 Q의원은 전했다.

93년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 정치권에 흘러 들어와 돌고 있는 돈은 대개가 1만원권 현금이다. 자금추적을 피하기 위해 수표를 받았을 때는 여러 차례 돈세탁을 해 지출할 때는 반드시 현금으로 하는 것이 원칙처럼 돼 있다.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이 신한국당 정재철의원에게 현금을 넣어 전달했다는 골프가방에는 1만원권으로 2억5,000만∼3억원이 들어간다는 게 국회주변의 얘기다.

『수표는 정말 믿을 수 있고 드러나지 않은 측근이나 친구 계좌에 넣었다가 현금으로 찾아 쓰지요. 절대로 친인척의 계좌는 이용하지 않습니다. 현금으로 들어 오면 되도록 은행에 넣지 않고 집에서 보관하지요. 씀씀이가 큰 여권실세나 대선주자는 물론, 웬만한 중진의원은 대개 집에 이런 용도의 비밀금고를 갖추고 있을 겁니다』

그는 비용을 줄일 수는 없느냐는 물음에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선수가 쌓이면 씀씀이가 커질 수 밖에 없어요. 지역구민과 후배의원 등 주변의 기대치가 그만큼 높아지고 개인적 야망도 커지거든요. 이를 감당할만한 돈을 만들지 못하면 결국 도태하는 게 현실입니다. 무리가 따르고 불법인줄도 알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잖아요』<유성식 기자>

◎어느 낙선후보 사용내역/“총선 기본 참가비 20억원”/막판 3일 돈달려 패배… 100억 쓴 사람도

지난해 4·11총선을 앞두고 당선권에 들려면 20억∼30억원의 선거자금을 써야 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정말 그렇게 많은 돈을 쓰는지, 그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를 확인하기란 쉽지 않았다. 선거후 법정 선거비용인 5,200만∼1억4,100만원을 넘게 썼다고 신고한 후보는 한명도 없었다.

15대 총선에서 야당후보였던 A씨는 『20억원 정도는 기본 참가비에 불과했고 거기서 얼마를 더 쓰느냐가 실제 득표에 영향을 미쳤다』고 털어 놓으면서 자신이 썼던 비용을 공개했다. 그나마 그가 공개한 내역은 후보윤곽이 드러난 지난해 2월부터의 것으로 선거 6개월전부터 들어갔던 사전비용은 뺀 것이다.

가장 먼저 돈이 들어간 것은 선거조직 구성. 선거본부 요원과 군책임자, 읍·면·리책임자는 물론 중간책도 두어야 했다. 3개군, 16개 읍·면, 256개 리에 기본조직원만 300명이 넘었다. 그밖에 100여명씩으로 구성된 청년조직과 부녀조직도 따로 두어야 했다. 1차 활동비로는 리당 100만원을 내려 보냈다.

『4, 5명을 데리고 술한번 먹으면 50만원이 넘게 드는 데 이 돈으로 어떻게 하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더군요. 리당 유권자가 많게는 1,000여명이나 되니 그사람들을 탓할 수도 없지요. 곧 추가 활동비가 내려갈 테니 조금만 참아 달라고 사정할 수 밖에 없었어요』

유력인사를 끌어 들이는 데 들어 간 돈을 합해 조직을 갖추는 데만 5억여원이 들었다. 게다가 군마다 사무실과 숙소를 만들고 유권자가 많은 읍·면에 사무실을 두는데도 약 1억원이 나갔다. 제대로 선거전이 시작되기도 전인 2월 한달간 무려 6억원이 그냥 날아 갔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3월 중순 2,000여명이 참석한 지구당 개편대회때는 동원비로만 1억원이 들었고 식사비 등으로 1억원이 더 들어 갔다. 3월말 법정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되기에 앞서 「잘 해보자」고 다독거리며 다시 2차 활동비로 리당 100만원을 지급했다. 청년·부녀조직원에게는 따로 한사람에 50만원을 줘야 해 총 5억원이 들어갔다.

『내려 보낸 돈의 20%정도가 유권자들에게 돌아 간다고 보면 됩니다. 활동비란 대부분 내부단속을 위해 할 수 없이 나가는 돈이지요. 열심히 뛰는 사람들에게는 따로 특별 지원금을 내려 보냈습니다』 특별지원금도 만만치 않았다. 「출당불사」를 운운하며 『그간 받은 돈에 대해 고발하겠다』고 돈을 타가는 조직원들도 있었다.

선거 일주일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3차 자금을 내려 보냈다. 1,2차 때와 같은 리당 100만원 규모였지만 손을 벌리는 곳에는 추가지원을 해 6억원이 들어 갔다. 유세비용도 많이 들었다. 5회의 합동유세와 정당유세에 박수부대를 동원하는 데 리당 50만∼100만원씩 모두 3억원이 들어 갔다. 막판에는 그야말로 돈싸움이었다. 선관위원들이 보든 말든 지나치는 지역마다 사무실에 한보따리씩을 풀어 놓아야 했다.

A씨는 지금도 투표전 3일동안 뿌릴 돈을 비축하지 않아 「막판 뒤집기」를 당했다고 생각한다. 선거후의 계산으로는 25억원을 그냥 날렸지만 특별히 많이 썼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는 적게 쓴 편입니다. 장관을 지낸 모후보는 사채까지 당겨 40억원을 썼고 100억원을 쓴 사람도 있습니다. 조직원에게 풍족한 활동비를 지급하며 선거운동을 했다면 그 정도는 쓰게 되지요』<배성규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