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씨 한테 대단히 미안스러운 일이지만 공개적으로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그냥 덮어버리고 넘어가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시중 소문에 휩쓸려 억울한 오해를 받는 것이 참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일이 정권적 위기에 관련된 문제이고 국가의 장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임을 생각한다면 개인적 불명예나 굴욕감은 참아줄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조사를 통해 결백이 밝혀진다면 그것처럼 다행스러운 일이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명예를 회복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라를 위해 일시적인 굴욕을 감수하는 애국심이 돋보이게 될 것이다.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면서 위기적 상황을 조성하고 있는 사나운 태풍을 잠재워 주는 고마운 일을 해주는 것이 된다.
만의 하나 결백하지 못한 점이 드러날 수 있다 할 경우에도 지금 조사를 받는 것이 나을 것이다. 어떤 힘으로도 진실을 은폐할 수 없다는 것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 노태우 비자금 사건에서 잘 드러난 바 있다. 어차피 밝혀질 일이라면 지금 다 까놓고 시시비비를 가려서 정리하고 넘어가는게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훨씬 낫다.
수사결과가 국민적 의혹을 해소시키는 수준에 미달한다면 당장 3∼4월이 문제될 수 있다. 불씨가 잠복돼 있는 노동법 문제에다가 한보의혹까지 겹쳐 상황이 전개될 경우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봄의 위기국면을 설령 잘 넘긴다 하더라도 9월을 전후해 본격화할 대통령 선거운동기간에 이 문제가 다시 쟁점으로 떠올라 집권여당에 치명적인 부담을 줄 것이고 그 고비를 또 잘 넘긴다 하더라도 다음 정부가 들어서면 다시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여당이 정권재창출에 성공하는 경우에도 노태우정부의 전례로 볼 때 재조사의 압력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며 야당이 정권을 잡는 경우는 말 할 필요도 없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 지긋지긋한 일로 나라의 힘을 소모시켜야 하는지 생각만 해도 답답한 일이다. 문민정부가 5, 6공 정부의 뒤치다꺼리 때문에 아까운 세월을 허송했던 전철을 또 다시 되풀이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오직 한 사람의 희생으로 문민정부를 구하고 국가의 위기를 막아줄 수 있다면 그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자청할 만도 하지 않은가 싶다.
한보사태는 이제 막바지 국면에 도달한 느낌이다. 국회가 열리면 의원들의 소환수사는 사실상 어렵게 되고 정치권 수사도 일단락을 짓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인허가 과정을 둘러싼 관변 수사는 지금까지 손도 대지 못했는데 이제부터 새로 일을 벌인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자금을 추적하는 문제도 5조원이 넘는 거대한 뭉칫돈이 돌아다녔으니 은행감독원과 국세청의 수백명 전문가들을 동원해서 성의있게 추적했더라면 어디선가 반드시 꼬리를 잡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런 노력을 한 흔적도 없고 지금부터 다시 그 방대한 작업을 새로 시작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의혹의 열쇠를 쥔 인물들도 수없이 떠올랐었지만 누구한테도 속시원한 얘기를 들을 수 없었다.
결국은 온갖 소문과 억측이 나돌아 의혹이 오히려 증폭될대로 증폭된 상태에서 수사를 마무리 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인 것 같은데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참기 어려운 일이다. 집권여당인 신한국당 지도부가 일괄 사퇴하고 총리를 포함한 내각이 총사퇴를 하고 대통령을 측근에서 보좌했던 청와대 수석들이 전부 사퇴를 한다해도 외압의 실체규명과 함께 물의와 의혹이 집중되고 있는 당사자의 결백이 밝혀지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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