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국제관행대로” 이례 신속 입장 표명/“북 붕괴 이미 시작됐나” 우려시각도미국은 최근 정보·국방당국이 북한의 와해가능성을 지적해오긴 했으나 막상 권력층의 핵심인물인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 황장엽의 망명사건이 터지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긴장하고 있다.
우선 미국은 통상적으로 정치망명 사건에 대해선 진상이 드러날 때까지 입장표명을 유보하던 자세에서 벗어나 이번 경우 국제 관행을 따라야 한다고 적극 주장했다. 사안의 비중으로 보아 주변국가간에 추가적인 마찰이나 긴장이 예상될 수 있으므로 미리 쐐기를 박겠다는 뜻이다.
미국은 북한내 엘리트계층에 이반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해 왔으나 황은 특히 김일성 주체사상을 확립시킨 북한 최고의 이론가라는 점에서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내에선 북한의 장래가 중앙정보국(CIA) 경우 앞으로 2∼3년, 국방부는 3∼5년 사이에 결정될 것이라던 전망을 철회하고 붕괴 시나리오가 이미 시작된 게 아닌가 하는 우려의 시각마저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당장 북·미관계가 얼어붙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북한의 3자설명회 불참으로 가뜩이나 냉각상태에 빠진 북·미관계가 대화채널까지 잃을 경우 북한의 점진적 변화를 목표로 하던 미국으로선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22일의 방한을 앞두고 있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이날 하원 세출위원회 증언을 통해 『북한의 정세불안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된다』고 강조한 것도 급작스러운 와해에 대한 미국의 불안감 표현이다.
황을 4차례 만난적이 있는 윌슨센터의 셀릭 해리슨 연구원은 『북한에서 가장 세계화하고 국제적인 인물이 바로 황』이라고 밝히고 『이번 사건은 북한권력내에 엄청난 긴장이 존재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미 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윌리엄 테일러 부소장은 『이번 사건이 북한지도층 분열의 상징』이라며 『김정일이 관심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도발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미국은 유럽의 미사일방어망을 한국에 이동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워싱턴=홍선근 특파원>워싱턴=홍선근>
◎일본/“분쟁 말려들라,더 두고보자” 논평도 자제 신중
일본 정부는 황장엽의 망명사건에 대해 13일까지도 공식 논평을 내지 않고 사건의 추이를 신중히 지켜보는 중이다.
정부 대변인 가지야마 세이로쿠(미산정륙)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금까지 망명한 북한 인사중 최고위급』이라며 『일본 정부로서도 주시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일본의 조심스런 자세는 아직 망명 경위와 이유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데다 중국의 입장, 북한의 대응 등도 남아있는 만큼 섣불리 외교분쟁에 말려들 소지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하시모토 류타로(교본룡태랑) 총리는 12일 밤 『보도는 듣고 있으나 노 코멘트다. 이것이 가장 정확한 코멘트다』라고 잘라 말했다.
일본 정부와 자민당 관계자들은 황의 망명 소식에 모두 『정말이냐』 『믿을 수 없다』고 놀라움을 표시했고 차츰 『북한이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인 듯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무엇보다 일본은 황의 망명이 중국에서 이루어진 만큼 직접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에 안도하며 사건이 향후 남북관계, 북·일관계에 미칠 영향에 더 주목하고 있다.
외무성 가토 료조(가등량삼) 아시아국장은 13일 자민당 안보조사회에 참석, 『4자회담이나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향후활동, 식량지원 등이 불투명해지지 않을까 우려한다』고 말했다.<도쿄=신윤석 특파원>도쿄=신윤석>
○“마르크스가 소련서 탈출한 꼴”
○…황장엽 망명사건은 마르크스가 소련에서, 토머스 제퍼슨이 미국에서 각각 탈출한 꼴이라고 워싱턴 포스트가 13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황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김정일을 비롯한 북한 핵심세력들에 대해 처음으로 진상을 공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워싱턴=홍선근 특파원>워싱턴=홍선근>
○…황장엽의 한국 망명은 서방 정보관계자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정보가치를 지닌다고 뉴욕타임스가 13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황이 한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중국이 출국을 허용해야 하지만 중국이 북한과 오랜 동맹관계라는 점에서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됐다고 지적했다.<뉴욕=조재용 특파원>뉴욕=조재용>
○황,생일축하 방문단 취소시켜
○…황장엽이 방일 기간에 조총련이 계획하고 있던 김정일 생일 축하 대규모 방북단 파견을 취소시켰다고 아사히(조일)신문이 13일 보도했다. 조총련은 김정일의 55세 생일인 16일에 맞춰 전세기 3대로 200명의 축하 방문단을 파견할 계획이었으나 지난주말 돌연 취소, 소수의 축하사절만 보내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도쿄=신윤석 특파원>도쿄=신윤석>
○…황장엽의 망명요청은 북한과의 전통적 맹방관계를 염두에 둬야 하는 중국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고 있다고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가 13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중국은 망명을 희망하는 북한인들이 직접 한국에 가도록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파리=송태권 특파원>파리=송태권>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등 홍콩언론들은 13일 황의 망명 요청은 북한에 엄청난 타격을 준 것은 틀림없으나 이를 북한의 붕괴로 보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분석했다. 홍콩 언론들은 북한이 황의 망명을 인정하지 않고 계속 한국의 납치로 몰아붙일 것이기 때문에 이번 사태의 해결에 난항이 예상된다고 덧붙였다.<홍콩=박정태 특파원>홍콩=박정태>
○모스크바 북 대사관 신경질 반응
○…황장엽의 망명소식에 러시아 외무부측은 『이같은 거물급인사가 망명하다니 놀랍다』며 북한체제의 앞날에 우려를 표명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 권력 엘리트층이 동요하고 있다는 정보는 있었지만 황의 망명으로 이같은 사실이 입증됐다』고 분석했다. 모스크바 주재 북한대사관측은 황의 망명소식에 『들은 적이 없다』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모스크바=이진희 특파원>모스크바=이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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