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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망명­자술서로 본 동기·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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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망명­자술서로 본 동기·심경

입력
1997.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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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미쳤는가” 괴로움과 항변/“굶주리는데 「이상사회」라니…”/절박한 북 식량난이 결행 배경/“붕괴위험성 없다” 북 체제는 부정안해황장엽이 자술서를 통해 밝힌 망명동기와 현재 심경은 다른 귀순자와 차원이 달랐다. 그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며 『결국 우리 민족을 불행으로(에서) 구원하기 위한 문제를 좀 더 넓은 범위에서 협의하고 싶은 심정에서 북을 떠나 남(남한)의 인사들과 협의해 보기로 결심하였다』고 말했다. 분단극복의 계기를 만들기 위해 자신을 던지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내비친 것이다.

여기에는 또한 더이상 자신의 말과 충고를 받아 들이지 않는 북한 체제에 대한 참담한 마음도 담겨져 있다. 현 북한 최고지도부에 「마지막 행동」으로서 변화를 촉구해 보겠다는 의미이다. 그는 또 『가능하면 마지막 순간까지 남과 북의 화해와 통일에 도움을 주고 싶을 뿐』이라고 민족화해에 강한 집념을 보였다.

권력에서 소외됐기 때문 이라든가 식량지원 요청을 위해 일본에 갔다가 성과없이 돌아온데 대해 문책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는 등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됐던 망명동기보다는 자술서의 망명동기가 더 진실에 접근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 대체적 평가다.

하지만 자술서는 관념론자의 소박하고 순진한 현실 인식능력과 단순한 민족주의·애국론이 기저를 이루고 있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자술서를 읽은 통일원 당국자는 『황장엽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고상한 명분을 부여했다는 정도의 인상을 받았다』며 『그가 여기에서 누구와 어떤 문제를 논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가 망명을 결심하게 된 현실적 배경은 오히려 자술서에 나타난 남북한 비판 부문에서 읽을 수 있다. 북한에 대해서는 『노동자 농민들이 모두 굶주리고 있는데 로동자 농민을 위한 리상(이상)사회를 건설하였다고 떠드는 사람들』, 남한에 대해서는 『민족의 적지 않은 부문이 굶주리고 있는데 관심도 없이 시위만 벌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그는 비판했다. 북한의 절박한 식량사정이야말로 그에게 결심을 굳히게 한 「현실적」배경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주민들이 굶주리고 있는 현실에서 주체사상과 남북 대결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항변으로 풀이된다.

한편 황은 자신의 사상적 자양분인 북한체제의 기반에 대해서는 결코 부정하지 않았다. 황은 『조선로동당과 그 령도자들에 대하여서는 감사의 정이 있을 뿐 사소한 다른 의견도 없다』며 『또 지금 공화국이 경제적으로 좀 난관을 겪고 있다고 하지만 정치적으로 잘 단결되어 있기 때문에 공화국이 붕괴될 위험성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술서는 『나는 50여년간 조선로동당원으로서 성실히 일하여왔다. 뿐만 아니라 조선로동당과 그 령도자의 두터운 사랑과 배려를 받아왔다』고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는데부터 시작했다.

황은 자신의 망명에 대해서도 『나 자신 미쳤다고도 생각할 때가 적지 않다』고 괴로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나만 미쳤겠는가 하는 것이다. 통일한다고 떠들면서도 서로 적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심지어 상대방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떠들고 있으니 이것을 어떻게 제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라고 평화를 강조했다.<김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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