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세대는 몰락할듯북한 지도부에 황장엽의 망명은 통상의 충격을 넘어선 경악 그 자체였을 것이다. 40여년간 권력의 최정점에 있으면서 지도층의 치부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황의 망명은 북한지도부가 백주에 발가벗고 서있다는 절박한 심정을 갖게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북한 외교부대변인은 황의 망명을 납치로 간주하면서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황의 망명은 북한정권의 위신추락과 권력핵심의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차원을 넘어 90년대 시작된 권력그룹내부의 동요를 가속시키는 변화의 단초로 작용할 것이라는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정시성 전 남북대화사무국장은 『90년 평양에서 만난 몇몇 인사들은 주체사상을 언급하지 않는 등 사상적 동요를 보였다』면서 『동구권 붕괴와 함께 시작된 동요는 김일성사망이후 가속화했으며 주체사상 1인자의 망명으로 정신적 공황으로 심화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동요는 군과 함께 권력의 뿌리를 이루는 당 정의 엘리트내에서 더욱 심각하게 표출될 것이다. 현 북한체제는 위기관리체제이다. 위기관리 아래서는 강경파가 득세하기 마련이며 북한도 역시 당·정보다는 군이 대내외정책을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개혁 개방에 전향적인 입장을 지닌 소외된 당정 엘리트들은 사상적 지주의 상실을 계기로 기존 사상은 물론 김정일체제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품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들 그룹은 지식인계급이기 때문에 이 회의가 집단 행동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황의 망명은 또 북한체제의 개혁 개방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줄 것이다. 북한지도부는 우선 지도부내의 사상통제를 강화할 것이다. 자유주의적 색채의 개혁 개방움직임을 보이는 당정인사들에게는 철저하고도 무자비한 철퇴를 내릴 것이다. 주석직 승계를 목전에 둔 김정일은 권력의 안정을 위해서 더욱 더 보수적인 빛깔을 띨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개혁 개방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지고 남북대화와 4자회담 등의 현안에서도 「벼랑끝」전술이 이전과 다름없이 구사될 것이다.
30여년간 김일성어록을 정리해 이를 주체사상으로 체계화한 황의 퇴장은 김일성 측근그룹의 퇴장과 맥을 같이한다. 지난해 김정일은 50번의 공식행사에 등장했다.
이중 황이 동행한 행사는 모든 권력인사들이 참석하는 김일성추모행사 단 한번 뿐이었다. 김일성세대를 상징하는 황은 김정일시대에는 맞지않는 것 같다. 김일성세대는 황이 밝힌대로 「안하무인격인」 김정일에게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김정일은 독자적으로 자신의 사상적 틀을 만들고 싶어할 것이다.<이영섭 기자>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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