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부터 당 교육받고 마르크스철학 심취◇이정선(가명·70·평양상업학교 14회)씨=황선생은 일본 주오(중앙)대학에서 공부하던 중 해방이 되자 45년말 귀국했다. 48년까지 자신의 모교인 평양상업학교에서 사회과목을 가르쳤는데 황선생은 그때 내 담임선생이었다. 차분한 성격에 말수가 적은 편이었지만 학생들에게는 제법 인기가 있었다. 선생은 한마디로 지독한 책벌레였다. 당시 선생은 『머리가 맑아지고 밥하는 시간에 책을 볼 수 있지 않느냐』며 밥대신 쌀 콩 솔잎 등을 생식했다. 선생은 관념론 철학에 흠뻑 빠져 있었다. 입만 열면 칸트와 플라톤을 얘기했다. 북한 사회 분위기에 편승, 마르크스철학의 의미를 묻는 학생이 있었지만 그 때마다 선생은 『마르크스철학은 사상축에도 끼지 못한다』고 면박을 줬다. 그러나 47년 여름방학 때인가 고급 당간부를 교육하는 중앙당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온 선생이 180도 변했다. 선생은 『그동안 나의 철학은 관념의 장난에 놀아났다.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 이제 인민을 위해 일해야겠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의아해 하며 『빨갱이가 되셨느냐』고 물었더니 선생은 『낡은 사상을 버리고 새 사상을 얻은 게 무슨 빨갱이냐』고 반문했다.
선생은 그 때쯤 김일성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교수생활을 시작했다. 48년 10월께 내가 월남하기 직전 인사차 찾아갔더니 선생은 『남한같이 썩어빠진 자본주의사회에 가서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며 『남한에 가면 공부를 하라』고 말했다. 또 『남한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돌아오더라도 환영할테니 걱정말라』고 얘기하던 게 생각난다. 선생은 월남을 막지는 않았다.
◇박문수(가명·68·평양상업학교 15회)씨=선생의 고향은 나와 같은 동네인 평남 강동군이다. 평양에서 태어났다거나 김일성대학을 다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나와는 고향이 같은데다 기숙사에서 사감과 학생으로 함께 생활해 가까운 편이었다. 선생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동료 선생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거나 노는 일이 없었다. 언제나 촛불을 켜놓고 공부만 했다. 생식을 한 것도 조금 특이했다.
선생과 동기인 7회 졸업생 선배들의 얘기를 빌리면 뛰어난 수재는 아니었다고 한다. 나는 선생에게서 경제학을 배웠는데 수업시간에 한 번도 마르크스주의나 공산주의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당시 학교분위기도 공산주의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선생은 나중에 공산주의자가 된 것같다.<정리=이동국 기자>정리=이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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