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사상 종언’ 상징적 사건/권력핵심부 마저 동요 반증/생일 앞둔 김정일 큰 타격/남북관계 더 냉각 불가피황장엽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의 망명은 그가 북한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주체사상의 대부였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그동안 탈북·귀순자 중에는 외교관 현성일·인민무력부 상좌 최주활씨 등 고위급 인사들이 상당수 있었다. 그러나 황은 이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 권력 서열 19위의 최고위급이다. 그는 수령과 당, 인민의 삼위일체를 주창한 주체사상과 김정일의 권력세습을 정당화한 후계자론을 확립한 북한 최고의 이론가이자 김정일의 은사였다.
그의 망명은 북한 체제가 경제난에 이어 마침내 정신적 혼돈 상황에 빠졌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통일원 당국자는 『이번 사건은 주체사상의 자기부정이자 몰락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북한체제에 사상적 기반을 마련했던 노 거물 이론가가 스스로 그 뿌리를 부정한 것이다.
그동안 탈북자의 급증 추세에도 불구하고 북한 체제가 당분간은 버틸 수 있다는 분석이 공감을 얻었던 것은 최고권력층이 건재하다는 평가때문이었다. 하지만 황의 망명으로 북한사회의 핵심부마저 동요하고 있음이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황의 망명 동기는 확실치 않으나 김정일정권의 장래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김정일의 최측근 권력 집단에서도 만연해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다.
황은 최근 일본을 방문하고, 심복 김덕홍을 통해 대러시아 노동인력 제공 계약을 지휘하는 등 대외 경제활동에도 발을 넓혀왔다. 그래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그의 망명이 북한 권력층내에서 온건파의 입지가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 아니냐는 분석을 하고 있다.
북한은 최근 압록강에 얼음 구덩이와 해자를 파는 등 탈북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체제의 위·아래가 함께 흔들리고 있는 현실에서 탈북 사태는 계속 확산될 것이며, 가능한 이들을 적극 수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우리 정부의 부담이 늘어날 것은 분명하다. 정부는 황의 망명으로 당분간 남북관계가 정상화하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이번 망명이 2월16일 김정일의 생일을 코 앞에 두고 발생했다는 점에서 김정일의 「분노」가 적지 않을 것으로 정부 당국은 보고 있다.
이번 김정일 생일은 55회로 통상 행사가 크게 치러지는 「꺾어지는 해」일뿐 아니라 오는 가을로 예상되는 최고권력 승계의 서막 성격을 갖고 있다. 이번 생일행사는 지난해부터 준비위원회가 구성됐으며 최근엔 「충성의 편지 릴레이」등 최고조의 열기를 띠면서 진행되고 있다. 황은 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김정일은 권력승계와 생일행사를 앞두고 「스승」이 「적진」으로 도망가버린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그 「적진」도 대선이라는 중요한 내부 일정을 안고 있다. 올해 남북관계가 순조롭지 않을 것임이 예고되고 있다.<김병찬 기자>김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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